요한 1서 3:4~12,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11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요한 서신을 묵상하다 보면 매우 특징적인 표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과의 사귐’(1:3), ‘대언자’(2:1), ‘화목제물’(2:2), ‘아들을 시인하는 자’(2:23), ‘기름 부음’(2:27), ‘하나님의 자녀’(3:1), ‘주를 향하여 소망을 가진 자’(3:3) 등등의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씨’(9절)가 그 속에 거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표현을 중심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먼저 4절을 보면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고 말합니다. ‘죄’가 ‘불법’이라는 할 때 ‘불법’(아노미아)은 ‘노모스(율법, 법)+아(부정 접두사)’입니다. 그래서 ‘법이 없음’, ‘무법’, ‘불법’을 뜻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규칙을 어기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와 주권,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5절을 보면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 ‘없앤다’(아이로)는 말은 ‘제거하다’, ‘없애다’, ‘들어올리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덮어주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죄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마치 암 덩어리의 뿌리를 뽑아 내는 것처럼 우리를 묶던 죄의 사슬을 끊으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 자신에게 죄가 있으면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에게는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6절을 보면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범죄하지 아니한다’는 현재형 시제로 ‘계속해서 죄를 짓는 습관적인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완전한 존재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 죄와 싸우고, 죄의 지배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주님께 나아가기를 반복하면서 죄에서 돌아서려는 의지를 갖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습관적으로 죄를 짓고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 안에 거하지 않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7절에는 더욱 단호하게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다고 말합니다. ‘의를 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그 법을 따라 살아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반면 8절에는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마귀는 ‘분열시키는 자’인데, 죄를 짓는 자가 마귀에게 속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분열을 통해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고,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속한 자는 계속해서 죄를 짓는 삶을 지속하면서 죄의 노예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8절 하반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마귀의 사슬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9절을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씨(σπέρμα)’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씨앗(seed), 생명, 자녀(children)’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심겨 졌는데, 이 ‘하나님의 씨앗’이 자라면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미워하고, 의를 추구하며, 거룩하게 살도록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씨앗’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노예로 살 수 없는데, 왜냐하면 죄가 우리의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씨앗이 있는 증거입니다.
결국 10절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는 분명히 구분되는데,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나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와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를 동일한 선상에서 말하는데, 요한은 단순히 도덕적인 의로움만이 아니라 의를 행하는 것을 사랑을 실천하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형제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데, 아무리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이웃을 섬기는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위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3장 34, 35절에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믿음을 보이는 행동으로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반대로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투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11, 12절에는 가인과 아벨을 예로 드는데, 12절을 보면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고 말합니다. 가인은 의로운 아벨을 질투하고 미워하여 결국 살인이라는 악한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미움으로부터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속에 품은 미움과 증오가 결국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해도, 마음속에 형제에 대한 미움, 시기, 질투가 있다면 그것은 가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씨가 아니라 마귀의 씨가 분열과 미움을 키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고, 미움은 마귀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 사도가 던지는 질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진정 하나님의 자녀인가? 내 안에 죄를 미워하고 의를 행하려는 하나님의 씨앗이 역사하고 있는가? 나는 형제를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가인처럼 미움과 시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씨가 살아 있다면 죄를 고통스러워하고 회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때로는 연약하고 넘어질 때도 있겠지만, 그리스도인은 죄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의를 행하면서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삶입니다. 우리 안에 심겨진 ‘의의 씨앗’(하나님의 씨앗)을 물 주고 가꾸어, 아름다운 사랑의 열매, 의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마귀에게 미혹되지 않게 하소서.
2. 하나님의 씨를 간직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3.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