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3:7~11,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보다 뛰어나신 예수님에 대한 소망을 스스럼없이 고백하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자랑으로 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성도라고 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충성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계속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사람들이 성도들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 먼저 7절을 보면,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이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히브리서 기자가 시편 95편 7~11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하는 말은 성령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말씀과 같은 권위가 있음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서 선지자나 천사나 모세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과 그에 따른 응답과 실천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8절을 보면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후에 광야를 지나면서 수차례에 걸쳐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를 대적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원망을 쏟아내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출애굽기 17장 2절을 보면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라고 말합니다. 결국 모세가 호렙산의 반석을 쳐서 물을 주면서 7절,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70인역 성경에서는 ‘맛사’와 ‘므리바’라는 지명 대신 ‘격동’, ‘시험’으로 번역하였는데, 왜냐하면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쨌든 성도들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완고’하다는 말은 ‘딱딱하다’는 의미로 마음이 굳어진 것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면 이집트의 파라오가 하나님의 이적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마음이 굳어진 상태를 나타냅니다. 결국 9절을 보면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였기 때문에 광야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시험하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이 여기에 있는데, 자칫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하나님을 테스트하려고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10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이 세대’는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나타냅니다. 이들은 출애굽 사건과 홍해 바다를 기적적으로 건너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미혹’되었는데, ‘미혹된다’는 말은 한편으로는 ‘방황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 ‘속다, 잘못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잘못된 길을 걷으면서 방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였는데, 이것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가르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거부해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노’를 받게 되었는데, 11절을 보면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10절에서 ‘노하여’(προσώχθισα)는 ‘증오, 극도의 혐오(to be angry with)’를 나타내는 단어이고 11절에서 ‘노하여’(ὀργῇ)는 ‘진노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처벌(impulse)’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처벌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민수기 14장 30절에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으로 실현 되었습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은 표면적으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안식’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성취되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와같은 안식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은 인간에게 가장 큰 불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였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마음이 미혹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2.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않게 하소서.
3. 마음이 미혹되어 주님의 길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