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3:3, 미쁘신 주님

 


데살로니가후서 3:3, 미쁘신 주님

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데살로니가후서 3장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먼저 복음이 다른 지역으로도 전파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과 영광스럽게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로부터 건져달라는 기도였는데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은 한마디로 심술궂고 악한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들은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을 방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3절부터는 다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한 기도 혹은 권면이 나오는데, 3절을 보면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미쁘’(Πιστς)다는 말은 앞서 2절에서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과 대조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은 신실하시다, 공동번역은 진실하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목회를 방해하고 어렵게 하였던 부당하고 악한사람들과는 달리 주님께서는 미쁘신 분’, ‘신실하고 한결같으신 분, 진실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미쁘다는 말은 사전적인 의미로는 믿음성이 있다’, ‘미덥다, 믿음직하다, 굳게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이는 순수한 우리말인데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사어처럼 되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성경에서 하나님은 미쁘시다, 미쁘신 주님이라는 표현이 여러번 나오기 때문에 여전히 살아 있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속성을 묘사할 때 미쁘신 분이라고 말한 예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34절을 보면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고 말할 때 참되시다는 말이 미쁘다’(Πιστς)는 단어와 같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9절에도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말하였고, 고린도전서 1013절에도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말할 때도 하나님을 미쁘신 분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524절에도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외에도 고린도후서 118, 디모데전서 115, 31, 49, 디모데후서 211, 13, 디도서 38, 히브리서 1023, 1111, 베드로전서 419, 요한119절 등에도 미쁘신 주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여러 서신에서 하나님을 미쁘시다’(Πιστς)고 말하였는데, 왜냐하면 주님께서 미쁘신 분이라는 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미쁘신 분이 아니라면 우리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고,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쁘신 분이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미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미쁘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한결같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한결같음고집스러움혹은 정체됨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한결같음은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항상성을 지킨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단순히 변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은 죽은 것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은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사랑의 본질만큼은 한결같은 분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시대, 신약의 시대, 교회의 시대가 저마다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미쁘신 하나님, 한결같은 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미쁘심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고 움직이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지만 동시에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내재하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미쁘신 주님께서 너희를 굳건하게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여기서 하나님의 미쁘심을 말하는 이유는 데살로니가 성도들 중에서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변덕스럽고 진실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거나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르네상스에 의해 신 중심의 사고 방식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전환된 이후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인간의 능력과 존엄함을 보편적 가치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민혁명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 시대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존엄하게 생각한다는 말이 곧 인간이 믿음직스러운 존재라는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엄성은 분명히 지켜야 하는 가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실존은 여전히 선악과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가인의 후예들로 살아가고 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못박으라고 외쳤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결코 믿음의 대상, 미쁘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바울은 미쁘신 주님께서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기를, 다시 말해서 흔들림없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한결같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결같은 사람으로 지켜주시고, 변덕스럽고 변질되기 쉬운 우리를 강건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또한 미쁘신 하나님께서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악한 자’(πονηροῦ)는 사실 ’(evil)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 악에서 구하옵소서’(6:13)라고 말씀하셨던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악한 자로 번역한 이유는 악한 자를 통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은 추상적인 상상의 산물이거나 관념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악의 영향을 받는 사람을 만들고, 그들을 통해 악을 전파합니다. 그래서 을 일으키는 자들, 예를 들어 사탄의 대리자와 같은 존재들로부터 미쁘신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지키신다고 말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미쁘심 속에는 성도들을 보호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미쁘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2. 미쁘신 주님께서 우리를 굳게하게 해 주소서.

3. 미쁘신 주님께서 우리를 악과 악한 자들로부터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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