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2】 사도행전 11:25~30, 그리스도인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2】 사도행전 11:25~30, 그리스도인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은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두 번째 시간입니다. 어제는 ‘교회’가 ‘이 반석 위에’ 세워진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았는데, 여기서 ‘이 반석’은 베드로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신앙 고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함께 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오늘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흔히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데,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이고, 언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은 사도행전 11장 26절,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는 말씀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붙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인데, 헬라어 ‘Χριστιανός’는 ‘작은 그리스도,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혹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라는 뜻입니다. 이외에도 사도행전 26장 28절(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과 베드로전서 4장 16절(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에도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생각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이 성경에서 많이 사용되지 않았는데, 한국에서는 초기에 ‘기독도’라고 불렀고, 독립신문에서는 ‘그리스도씨교’라고도 표현했습니다. 나중에 ‘예수교인’ 혹은 ‘예수쟁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특히 ‘예수쟁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쓰여진 말이었는데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에도 ‘멸시와 조롱’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나사렛 사람’(막 14:67, 요 1:46)이라고 하대하였고, 또한 사도행전 24장 4절을 보면 바울을 향해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고발하는 것으로 볼 때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은 자신들의 성령 체험과 회심 사건을 다른 종교로의 개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이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의 일파, 혹은 유대교 중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단자들’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인의 교회가 유대교로부터 공식적으로 분리된 때는 AD 90년 에 있었던 바리새인들의 [얌니야 회의(Council of Jamni)]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출교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유대교 안에 있는 특이한 사람들을 통틀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11장에는 이들이 유대교인과 다른 ‘그리스도인’으로 불리게 된 몇가지 중요한 이유가 나옵니다. 먼저 19절을 보면 처음에는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다가 20절에는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첫 번째 특징은 유대인과 헬라인을 막론하고 ‘인종적’ 구분과 관계없이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이렇게 안디옥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파송하였고, 바나바는 이들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23절)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나중에 바울을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서 26절을 보면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이후에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는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방식이 개별적인 사람이 아니라 ‘모임과 공동체’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1년 동안 복음을 듣고 배운 후에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신앙 교육과 훈련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점점 만들어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 그리고 공동체의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며 또한 신앙 교육과 훈련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요즘에는 자기 혼자 신앙 생활을 한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성경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신앙 공동체 안에 속해 있어야 하고 또 신앙 교육과 훈련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돕고 구제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28절을 보면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29절을 보면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였고 실제로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부조를 실행하였습니다. 앞서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모이기 시작했을 때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파송하여 이들을 영적으로 지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예루살렘 교회가 흉년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안디옥에 모인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물질적으로 도왔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교회의 생일이라고 할 수 있는 성령강림사건에서도 똑같은 일이 있었는데, 사도행전 2장 44, 45절을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도 ‘그리스도인’들의 분명한 특징이 물질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 이웃과 성도들을 돌보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실 여기서 ‘안디옥 교회, 예루살렘 교회’라고 표현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유대교로부터 분리된 독립적인 종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유대교 안에 몇몇 특이한 유대인들 혹은 일파처럼 보였지만 ‘그리스도인’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믿음에 대해 알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웃과 성도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에 비추어 그리스도인다운 삶에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2. 함께 모여서 말씀을 배우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3. 성도와 이웃을 위해 물질적인 도움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