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서 3:19~24, 우리의 마음보다 크신 하나님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사도 요한은 3장 전체에 걸쳐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18절) 형제를 사랑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 자신이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19절) 할 수 있기 때문인데, ‘진리에 속한다’는 말은 단순히 교리적인 동의를 넘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 안에 있는 존재론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또한 ‘우리 마음을 굳세게’한다는 말에서 ‘πεῖσομεν’(페이소멘)은 ‘설득하다’, ‘확신하게 하다’는 의미로, 내면의 불안과 의심을 극복하고 신앙적 담대함을 회복하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결국 형제 사랑은 단순히 윤리적인 선행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관계된 신앙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절을 보면 ‘이는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ἡ καρδία ἡμῶν)은 구약과 신약에서 인간 존재의 중심, 즉 사고, 감정, 의지, 양심을 포괄하는 개념인데, ‘마음이 우리를 책망한다’(καταγινώσκῃ ἡμῶν)는 말은 성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죄책감, 자기 비판, 영적 의심’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서 불완전한 인간, ‘아직’ 완성된 구원에 이르지 못한 성도는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는데, 요한은 여기에 대해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다’고 말합니다. ‘크시다’(μείζων)는 말은 우월성, 권위, 사랑의 깊이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인간의 내면적인 정죄보다 본질적으로 더 크고 깊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γινώσκει πάντα)고 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숨겨진 상처, 동기, 상황까지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더 우리 자신에 대해 잘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인간은 자기 자신의 내면조차도 온전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입니다. 결국 요한이 말하려는 것은 성도는 자기 비판을 절대화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21, 2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담대함’(παρρησία, 파르레시아)은 성도가 하나님 앞으로 거리낌 없이 나아갈 수 있는 내면의 자유, 신앙적 확신을 나타냅니다. 자기 자신의 내면적 정죄를 이겨내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을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은 단순히 만병통치약처럼 기도가 응답된다는 말이 아니라 성도와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될 때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모든 것이 성취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계명들’(τὰς ἐντολὰς αὐτοῦ)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23절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구절이 요한 신학의 핵심인데,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적 동의를 넘어, 예수의 인격과 구속 사역을 전인격적으로 신뢰하고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헬라어 ‘ἀγαπάω’(아가파오)로 자기희생적이며 실천적인 사랑을 나타냅니다. 결국 요한에게 이 두 가지는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는데, 참된 신앙은 반드시 사랑의 실천으로 연결되며, 사랑 없는 신앙 고백은 불완전한 것이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와같은 믿음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24절을 보면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거한다’(μένειν, 메네인)는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인데, 하나님과의 지속적이고 인격적인 교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친밀함과 영적 연합을 나타냅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은 성령의 내주하심인데, 성도의 삶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실질적 임재로 하나님께서 성도의 삶에 ‘거하심’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성령의 내주하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oeur)는 인간 존재를 ‘해석적 자아’(Hermeneutic Self)로 정의하면서 인간의 내면은 언제나 자기 해석과 사회적 맥락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내면이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해석할 때, 왜곡된 자기인식이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인간 내면의 해석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교정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보다 크신 분이며, 우리의 연약함과 한계를 모두 아시면서 동시에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시선 안에서 신자는 자기 비판을 초월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서며, 사랑과 믿음의 삶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면적 갈등과 정죄 속에서도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구속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은 종종 우리를 정죄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 마음보다 크고, 깊으며, 강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책에서 벗어나 사랑의 실천과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참된 확신과 담대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우리 마음보다 크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2.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3.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