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3:1~7, 생각하고, 기억하는 사람

베드로후서 3:1~7, 생각하고, 기억하는 사람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앞서 베드로후서 2장에서 베드로는 교회 안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의 실상을 경고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신앙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탐욕과 욕망, 자기중심적인 충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고, 편리한 구원, 책임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부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참된 신앙은 십자가의 길, 즉 비움과 사랑, 섬김과 희생의 길인데, 베드로후서 3장에서는 구약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과 사도들의 교훈을 상기 시키면서 말세가 되면 나타나게 될 징조와 하나님의 심판, 재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라고 말합니다. 지금 쓰고 있는 편지가 두 번째 편지라면 첫 번째 편지를 먼저 보냈다는 말일텐데, 베드로후서 1, 혹은 베드로전서를 첫 번째 편지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내용상으로 유다서를 첫 번째 편지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베드로후서의 저자가 첫 번째 편지에서 그치지 않고 다시 한번 권면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인데, 왜냐하면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절을 보면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고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데, 신앙 생활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말씀이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을 이끌어가는 현재적이고도 미래적인 힘을 가지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는 거짓된 가르침과 이단 사상의 도전에 흔들리는 상황에서 주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명하신 것을 기억한다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두 번째 편지를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을 조롱하는 자들이 있는데, 3절을 보면,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조롱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4절을 보면,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냥 있다는 말은 지속되다, 계속되다는 의미로 창조 이래로 세상의 모습과 자연 법칙이 변하지 않고 규칙적인 것처럼 구약의 조상들도 수없이 잠들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같은 급박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이것은 단지 신학적인 주장이나 철학적 의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 속에는 희망을 포기한 인간의 절망, 그리고 불의 속에서도 아무 책임 없이 살고자 하는 자기방어가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이고,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 “정의는 승리하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은 없어” “교회가 어떻게 세상을 바꾼다는 거야라고 말하면서조롱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희망 없는 신앙, 기억을 상실한 조롱은 그리스도인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데, 여기에 대해 베드로는 5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말합니다. 혼돈과 흑암과 어두움 속에서 하나님의 질서와 조화를 이 세상에 구현한 사건이 하나님의 창조인데,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조롱하는 이유는 단순한 무지나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고의적인 망각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이와같은 고의적인 망각에 빠지는 이유는 기억을 하면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생태환경의 파괴에 대하여 책임을 느껴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면, 지금의 불의와 부조리에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억하는 사람은 지금 그 길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와같은 것을 기억하지 않기 위해서 고의적인 망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노아의 홍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물에서 땅이 드러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노아의 홍수처럼 물로 세상을 심판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7절을 보면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은 단지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화와 회복, 새 창조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물로 심판하시고 불로 정화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고의로 망각하면서 조롱하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과거에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고, 다가오는 시대에 불로 새롭게 하실 것에 대해 말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심판을 완성하신다는 말씀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기억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약속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종말에 대한 믿음은 공허한 종말론이 아니라 새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조롱에 흔들리지 말고, 고의적인 망각에서 벗어나 기억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정의롭게 살고, 약자를 돌보면서 이 세상에 대하여 책임적인 신앙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진실한 마음을 일깨우게 하소서.

2.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소서.

3. 다가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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