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2:15~22,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베드로는 15절에서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에 대한 형벌과 심판에 대해 말했는데, 여기서는 거짓 선생과 같은 사람들을 발람의 길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발람에 대한 이야기는 민수기 22장부터 24장까지에 자세하게 나오는데, 크게 두가지 주제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발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저주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모압 왕 발락의 청탁을 받아 들였습니다. 하지만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대신 축복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발람이 발락의 청을 받아서 가려고 했을 때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서 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발람이 나귀에게 채찍질을 하자 나귀가 입을 열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였습니다. 그제서야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가 길을 막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렸던 발람이 짐승보다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발람의 모습을 베드로는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바른 길을 가고 있었던 발람이 바른 길에서 떠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발람이 가려고 했던 길은 불의의 삯을 사랑하는 길이기 때문인데, 여기서 불의의 삯을 사랑한다는 말은 불의의 행위로 말미암는 삯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하는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직 을 사랑해서 그 길로 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오죽하면 신명기 254절을 보면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말씀하였고,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913절에서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무리 거룩한 주의 일을 한다고 해도 생존을 위해 을 받는 것은 필수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그 불의의 삯, 불의의 행위로 말미암아 받는 삯이라면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발람은 그것을 거부하지 못해서 바른 길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발람은 발락이 베푸는 온갖 향응과 대접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인데, 사실 처음부터 사람들이 악한 길로 들어서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악인들의 꾀로부터 시작해서 갈팡질팡 하다가 점차 죄인들의 길에 서게 되고, 마침내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주저 앉게 되는 것입니다. 발람은 발락의 요구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물질에 대한 욕망 때문에 점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16절을 보면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앞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민수기 22장을 보면 발람과 나귀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발람은 말을 듣지 않는 나귀를 채찍질하였고, 지팡이로 때렸습니다. 그러자 나귀가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고 항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때 하나님의 사자가 발람에게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를 살렸으리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발람이 살 수 있었던 것은 말을 듣지 않는 나귀 덕분이었습니다. 때로는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인간이 말 못하는 짐승보다 어리석은 경우도 있습니다. 발람은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눈이 멀었지만,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었고, 발람은 나귀를 때렸지만, 나귀는 길을 벗어나서 오히려 발람의 생명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다고 말합니다. 발람의 행동이 미친 행동과 같다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발람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물이 없는 샘은 겉모습은 샘처럼 보이지만 물이 없어서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줄 수 없는 것이고,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으면 뭐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찬 바람이 불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실체가 없는 존재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은 물이 없는 샘처럼 오히려 더 갈증을 느끼게 할 뿐이고, 아무런 실체가 없어서 안개와 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다는 말은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18절을 보면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 말을 듣고 따라가면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21절에 있는 것처럼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낫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믿다가 실족하는 것이 아예 처음부터 몰랐던 것보다 더 나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22절에서 속담에 나오는 것처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고 말하는 것처럼 믿음의 길에서 실족하는 것은 가장 미련하고 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발람의 길은 어떤 길입니까? 진리를 안다고 하면서도 욕망에 이끌려 악을 거부하지 못하고 미혹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모습을 미친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믿지 않고 악을 행하면 개가 토했다가 다시 그것을 먹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지 않게 하소서.

2. 불의의 삯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3. 발람처럼 미친 행동을 하지 않게 하소서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1】 마태복음 16:13~20, 교회의 시작-이 반석 위에

디모데전서 3:8~10,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 3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2】 사도행전 11:25~30, 그리스도인

히브리서 3:7~11,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사도행전 5:12~42, 능욕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는 기쁨

디모데전서 3:1~3,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 1

디모데전서 1: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야고보서 1:1~3,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데살로니가후서 3:7~9,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데살로니가후서 3:3, 미쁘신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