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1:8~11,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베드로후서 1:8~11,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어떤 사람이 성공한 사람일까요?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신기한 능력’(3절)으로 경건의 삶을 살면서 ‘신성한 성품’(4절)에 참여하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는 삶을 사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8절을 보면,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라고 말합니다. 공동번역을 보면 “여러분이 이런 것들을 풍성하게 갖추면 여러분은 부지런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고 할 것이며 마침내는 그를 잘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여기서 ‘이런 것’은 앞에서 언급한 ‘여덟 가지’ 성숙한 믿음의 징표들을 나타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속에 풍성하게 자라게 된다면, 그런 사람은 마땅히 예수님에 대하여 더욱 깊이 알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그를 통해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게 되면 그의 삶이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고’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지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2, 3, 8절) ‘아는 것’(에피그노시스)은 ‘정확하고 올바른 지식으로 철저하게 아는 것’, ‘완전한 식별’을 뜻합니다.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깨닫고, 인지하는 것이고 가슴으로 느끼는 수준을 넘어서 ‘예수님에 대하여 더욱 깊이 알려는 노력을 통해 정확하고 올바르고 완전하게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야 하냐면, 죄인된 인간의 성품과 지식으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인데, 마치 아직 온전한 인격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가 부모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것처럼 신앙의 인격이 온전하게 형성되지 않은 성도들은 이와같은 훈련과 연단의 과정과 앎의 시간을 거쳐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9절을 보면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맹인’과 ‘멀리 보지 못한다’는 것은 앞을 볼 수 없다는 것과 ‘근시’적인 사람을 나타내는데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빛이 사라져서 영적인 안목이 어두워진 사람들은 눈 앞에 있는 탐욕과 욕망으로 인해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참된 진리의 빛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다’고 말하는데, 과거에 받았던 세례를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도 과거에는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받았던 세례의 의미를 잊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이유는 세례는 죄 용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지만 이들은 이와같은 세례의 참된 의미를 잊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10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부르심과 택하심’이라는 말의 순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부르심을 받았지만 택하심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듣고 응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택하심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은 은혜 안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적인 삶을 통해서 거룩한 삶을 영위하며 궁극적인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특징은 ‘인간이 신을 찾은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을 찾아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허락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이 아무렇게나 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지난 주일에 살펴본 탕자 이야기에서 돌아온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온 후에 또다시 가출을 한다면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해서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택하심’입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와같은 삶을 위해 신앙적 고투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손쉬운 믿음>에 길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좁은 길을 가려고 하지 않고 넓고 편한 길로만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따라서 살기 보다는 눈 앞에 보이는 욕망과 욕심만 추구하면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11절을 보면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말합니다. ‘넉넉히 주신다’는 말은 ‘충분하고도 완전한 공급’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부르심과 택하심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힘과 능력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성공이 근시안적인 성공이나 맹목적인 성공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는 성공입니다. 그렇게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부르심과 택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넘치게 하소서.
2.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