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5:5~6,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베드로전서 5:5~6,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앞서 베드로는 교회를 섬기는 장로들에게 권면을 하면서 ‘억지로 하지 말고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라’(2절)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교회를 섬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섬기는 목회의 삶에서는 때로는 다른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독하고 외로운 영적 투쟁의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절을 보면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젊은 자들’(νεώτεροι)은 단순히 나이가 젊은 사람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새롭다’는 뜻도 있기 때문에 이제 막 신앙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아마 처음 신앙 생활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앙 생활이 여러 가지로 생소하게 느껴졌을텐데, 먼저 ‘장로들에게 순종(ὑποτάγητε)’하라고 말합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종속시킨다’는 뜻인데, 장로들의 가르침을 받아 자신을 ‘양보하고 협력하고 책임을 지고 부담을 지는 자발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말합니다. ‘허리를 동인다’(ἐγκομβώσασθε)은 말은 ‘앞치마를 두른다’는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노예들이 주인의 시중을 들기 전에 먼저 앞치마를 두르면서 준비를 했던 모습을 나타냅니다. 특히 베드로가 ‘겸손의 앞치마’를 두른다고 말하는 것은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요13:4)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던 사건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겸손의 앞치마’를 해야 하는 사람은 ‘장로들’이나 ‘젊은 자들’만의 숙제가 아니라 ‘다 서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성도들이 상호간에 ‘겸손의 앞치마’를 두르고 서로를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잠언 3장 34절,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라는 말씀을 LXX에서 인용한 것인데, ‘교만한 자’(ὑπερηφάνοις)는 ‘ὑπέρ’(above or beyond)와 ‘φαίνω’(to shine or to appear)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낮추고 자신을 높이는 것이고, 그래서 자기를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게 생각하는 ‘거만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를 ‘대적한다’(ἀντιτάσσεται)고 말하는데, 이것은 군사적인 용어로 ‘맞서 싸우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서 배치한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적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는데, ‘겸손한 자’(ταπεινοῖς)는 자기를 낮추는 사람인데, 사실 그리스 로마 시대에서는 ‘겸손’을 미덕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명예, 지위, 권력’을 과시하고 드러내는 것을 중시하는 문화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대 교회 공동체는 이와같은 그리스 로마의 주류적인 문화 규범을 완전히 전복시켰습니다. 그러면서 ‘겸손’을 기독교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모범으로 받아들였는데,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겸손을 보이셨고, 또한 겸손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겸손은 단순히 ‘자기 희생’이나 ‘헌신’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겸손한 사람에게 가장 본질적인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겸손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χάριν)를 주신다고 말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카리스’는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이고, 인간의 중생과 성화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급은 이와같은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인데, 이것은 ‘겸손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왜냐하면 교만한 자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6절을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은 구약 성경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악인을 심판하신다고 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6장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고 말할 때 ‘하나님의 강한 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 있는 것이 바로 ‘겸손’이고 반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을 거부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장자와 바로의 군대를 홍해 바다에서 수장시키셨던 이유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을 거부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 있는 사람은 ‘때가 되면 높여주신다’고 말합니다. ‘때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높여준다’(ὑψώσῃ)는 것은 ‘명예와 권위를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한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 생활을 ‘잘’ 한다는 말은 교회 생활과 활동에 ‘능숙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신앙 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으로 믿는 예수님께서 ‘겸손’의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주님의 본을 따라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은 ‘자신의 허리를 겸손으로 동이’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는 사람은 겸손한 말, 겸손한 행동, 겸손한 인격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게 하소서.
2. 겸손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겸손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