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5:1~4,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베드로전서 5:1~4, 양 무리의 본이 되라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부터는 베드로전서 마지막 5장을 묵상하게 되는데, 앞서 4장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 살아야 한다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런데 5장에는 특히 장로들에 대한 권면이 나오는데, 사실 장로는 구약 시대에는 나이가 많은 연장자를 부르는 호칭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신약 시대로 오면서 사도행전 11장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에 장로 제도가 있었던 것을 볼 수 있고, 또 나중에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 여행을 하면서 각 지역 교회에 장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장로는 현재의 감독과 비슷한 의미와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감독이 주로 직분을 나타내는 측면이 강하다면 장로는 교인들을 양육하고 돌보는 측면을 더 강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장로 제도는 장로교에서는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와 치리하는 장로로 좀 더 세분화 되었습니다.

 

어쨌든 1절을 보면 베드로는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함께 장로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겸손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에서는 사도의 권위가 대단히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사도로서 어떤 특권적 위치에서 장로들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도 여러분과 같은 장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사정과 마음을 잘 압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함께 장로된 자라는 말은 자신이 지역 교회를 섬기는 장로들과 동역자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지역 교회의 장로들에게 권면을 할 수 있는 것은 베드로에게 어떤 특별한 지식이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는 시련을 당하고 박해가 일어나는 시대에 먼저 그리스도의 고난을 경험하였고, 그 의미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고난과 박해를 받는 지역 교회의 장로들에게 권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교회 안에서 장로가 된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고난을 증언하는 사람이고, 또한 장차 나타날 영광, 즉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이와같은 장로들에게 권면을 하면서 2절을 보면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라고 말합니다. 사실 요한복음 2115~17절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면서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베드로가 또다른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베드로가 받아서 장로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장로들에게 맡기신 사명은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양은 나의 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 무리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되고 양 무리를 위탁하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인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 무리를 돌보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어떠한 이유와 동기로 양무리를 돌보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베드로는 먼저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기꺼이 하라고 말합니다. ‘억지로와 자원한다는 말은 대조를 이루는 단어인데, 사람들이 자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억지로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사실 처음부터 억지로 장로가 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원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억지로 어쩔 수 없이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었던 자신에게 하나님의 직임을 맡겨 주셨다는 은혜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도 불행하고, 함께 하는 성도들도 불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나쁜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하는 경우입니다. 여기서 더러운 이득이라는 말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공동체의 재정을 이용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한마디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공동체의 재정을 이용하거나 돈을 목적으로 직임을 감당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3절을 보면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말합니다. 먼저 맡은 자들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제비 뽑다는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제비를 뽑아 땅을 할당받았던 것처럼 장로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교회론에 대한 가르침이 있는데, 종교 개혁 이후에 교회는 가톨릭의 교권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자본주의적인 경쟁 체제가 교회 안으로 급속히 유입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는 공교회 정신보다는 개교회 우선주의가 주도적이 되었고, 결국 교회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처럼 교인을 얻기 위한 경쟁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각각 할당해 주신 성도들이 있는데, 그들을 맡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크든 작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들을 돌보는 것이 장로된 자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에게 주장하는 자세’(κατακυριεύοντες)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것은 군림하여 세도를 부리고 지배하고 강제로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왜 장로가 성도들에게 군림하여 세도를 부리고 지배하고 강제로 다스리게 되었던 것일까요? 왜냐하면 교회가 권위주의적인 체계가 되고 있었기 때문인데, 흔히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몸의 모든 지체는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없고, 함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지체는 더 중요한 기능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일을 평가하는 기준이 세속적인 기준으로 변질되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양 무리의 본(τύποι)’이 되라고 말합니다. ‘’(τύποι)은 말 그대로 ‘example, model, form’이라는 뜻인데, 흥미로운 것은 이 단어의 어원이 때리다, 때려 눕히다입니다. 그래서 이라는 것은 어떤 물건을 치거나 때려서 생긴 자국이나 패턴을 그대로 따라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보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고난의 흔적을 그대로 물려 받은 사람이고, 그 흔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양 무리의 본을 보이는 장로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4절을 보면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고 말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을 목자장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장로들이 양 무리를 치는 사람들이라면 예수님은 양무리를 치는 장로들을 돌보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도를 돌보는 장로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돌보심을 받고, 또한 시들지 않는 영광의 관은 운동경기에서 승리자에게 월계관이 주어지는 것처럼 직임을 잘 감당하는 장로들이 받을 영광스러운 상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 나타날 영광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자원함으로 기꺼이 봉사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맡은 자들의 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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