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4:15~19,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베드로전서 4:15~19,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도 계속해서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하는데, 앞서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는 ‘말과 행동’을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과 행동으로 하라(11절)고 말했고, 또한 연단의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12절)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는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먼저 15절을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라고 말합니다. 앞서 14절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라고 말했는데, 만약 그리스도의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다가 받는 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받는 욕이라면 그런 욕은 가급적 받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15절을 보면 구체적으로 ‘살인, 도둑질, 악행, 남의 일을 간섭’하다가 욕을 먹게 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인, 도둑질, 악행은 쉽게 이해가 되지만 ‘남의 일을 간섭하는’(ἀλλοτριεπίσκοπος) 사람도 여기에 포함된다는 점이 의외인데, 여기서 ‘간섭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속하다’ ἀλλότριος(belonging to another)는 단어와 ἐπίσκοπος (감독자, overseer or bishop)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권한이 없는 사람이 남의 것을 탐내거나 주장하는 경우를 나타내는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사회 공동체의 질서가 무너뜨리기 때문에 위험한 범죄 가운데 하나로 포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와같은 행동으로 고난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 아닙니다.
그런데 16절을 보면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나오는데, 사실 초대 교회 초기에는 ‘제자, 형제’라는 호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인’은 안디옥 교회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행 11:26)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호칭은 사도행전 26장 28절을 보면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는 표현처럼 처음에는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을 박해하는 과정에서 주로 이 단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베드로도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다가 받는 고난’, 즉 ‘의로운 고난, 정의로운 고난’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고난이기 때문에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7절을 보면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성도들이 고난을 받는 것으로 인해 이미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은 마지막 멸망의 심판이 아니라 종말의 날이 될 때 먼저 그리스도인을 성결케 하는 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와같은 심판이 성도들에게 먼저 임한다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의 마지막 심판은 얼마나 크고 두려운 일이겠냐는 것입니다.
또 18절에서도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라고 말합니다.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조금 어색하게 들리지만 앞서 12절에서 ‘불 시험’을 당하더라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말씀과 연결시켜서 생각해 보면 성도들도 어려운 불 시험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과 신앙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견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들은 마지막 심판의 때에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19절을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모든 시련과 고난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아무리 고난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오히려 끝까지 ‘선’을 행해야 하고,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의탁한다’는 말은 ‘예금하다, 맡기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신뢰를 가지고 의탁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의미로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23장 46절에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스데반도 사도행전 7장 59절에서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사람, 몸과 마음과 영혼을 미쁘신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기에 끝까지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사는 동안 이렇게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게 하소서.
2.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끝까지 선을 행하며 하나님께 영혼을 맡기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