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1:1~4,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베드로후서 1:1~4,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베드로후서 1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편지를 쓰는 사람은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인데, 앞서 베드로전서 11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라고만 되어 있었는데 여기서는 베드로의 원래 이름인 시몬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의 저자가 베드로라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고, 또한 16절 이하에는 변화산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갔던 제자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뿐이었기 때문에 이것도 베드로후서의 저자가 베드로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에서도 설명드린 것처럼 베드로후서가 베드로가 쓴 것이 아니라는 반론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전서와 마찬가지로 후서에도 훌륭한 헬라어 문체로 쓰여져 있고, 설령 대필자가 썼다고 해도 전서와 후서는 너무 차이가 많아서 동일 저자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베드로의 제자나 그를 존경하는 사람이 베드로의 이름으로 쓴 글로 특히 1C 말에 나타난 이단 사상에 대항하여 교회를 방어하려고 썼던 글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와같은 사실 때문에 베드로후서는 여러 가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고, 심지어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도 냉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저자에 이어 그 다음에는 편지를 받는 수신자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1절 하반절을 보면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동일하게 보배로운이라는 단어는 ‘ἰσότιμον인데, ‘ἴσος’(equal)τιμή’(honor, value)의 합성어로 동일한 가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인 베드로와 성도들이 동일하게 소중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초대 교회 상황에서 베드로는 사도로서 매우 큰 권위와 존경을 받고 있었지만 일반 성도들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가치와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했기 때문인데, 특히 당시에는 영지주의자들이 자신들만이 특별한 지식과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와같은 베드로의 언급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인사말이 나오는데,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초대 교회의 일반적인 인사는 은혜와 평강이었는데, 베드로는 여기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라는 말을 첨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금 전에 설명한 것처럼 신령한 지식을 추구하면서 자신들만이 그러한 지식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있어서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지니고 있고,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보다 더 뛰어난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3절을 보면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신기한 능력이라는 번역은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칫 그의 신기한 능력’(τς θείας δυνάμεως ατοῦ)희한하고 신비한 능력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본문을 직역하면 그 분의 신령한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에는 신적 권능으로 번역하였고, 공동번역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생명경건한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성도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누리게 하시는 그 분을 알게 되었다(, 아는 지식)는 것입니다. 결국 2절에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라는 말과 3절에서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라는 구절이 서로 연결되는데, 영지주의자들처럼 특별한 지식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 참된 지식이고, 우리가 이와같은 지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지식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4절을 보면,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신성한 성품신적인 성품,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헬라 사상 중에 신인합일사상이나 인간의 내면에는 본래부터 신적 성품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잘 개발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베드로는 여기에 맞서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3)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신기한(신적인)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신성한 성품(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하려고 편지를 쓰게 된 것인데, 자세한 내용은 5절부터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우리 모두가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지닌 사람임을 알게 하소서.

2.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갖게 하소서.

3.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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