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1~7,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시편 11:1~7,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은 시편 11편을 묵상하는데, 표제를 보면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인도자,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앞서서 노래를 부르면 나머지 사람들이 그 노래를 뒤따라서 함께 부르는 방식인데, 이것은 노래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의 고백, 행동, 신앙의 모습이 점차 다른 모든 회중의 고백, 행동, 신앙의 삶이 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시편 11편의 배경은 크게 두 개의 사건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다. 첫째는 다윗이 사울의 박해를 받으면서 심각한 불안을 느끼던 시기이고, 둘째는 압살롬이 비밀리에 주도하던 반역 계획이 드러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다윗의 생명이 위협을 받는 긴박한 상황에서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의지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완료형)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사냥꾼에게 쫓기는)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피한다’(חָסִ֗יתִי)는 말은 ‘도망친다’(to flee for)는 의미보다는 ‘to trust, to seek shelter’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완료형’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이미 하나님을 신뢰하여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냥꾼에게 쫓기는 새처럼 ‘도망하라’(נ֝֗וּדִי)는 친구들의 충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팔레스틴의 산에는 적들을 피해서 숨을 수 있는 안전한 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산으로 도망하라는 권고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실제로 다윗이 굴에서 숨어서 위험을 넘겼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의 행동조차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하나님께 피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2절을 보면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다윗의 친구들이 다윗에게 급히 도망치도록 권고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활을 당긴다, 화살을 시위에 먹인다’는 말은 모두 화살을 쏘기 직전의 상황을 나타냅니다. 더군다나 ‘어두운 데서’ 화살을 쏘려고 한다는 것은 ‘은밀한 중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디에서 화살이 날아오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피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3절을 보면, ‘터(הַ֭שָּׁתוֹת)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라고 말합니다. 표준새번역을 보면 ‘기초가 바닥부터 흔들리는 이 마당에 의인인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느냐?’라고 번역합니다. 이 말은 다윗의 친구들이 다윗에게 했던 말인데, ‘터가 무너진다’는 말은 ‘국가의 기강과 법률과 질서’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의 기초가 무너지게 되면 그 다음에 다윗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와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산으로 도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시금하다, 분석하다)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가 ‘하늘’에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현존을 이중적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먼저 보좌가 하늘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지상의 성전에서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모든 인간들을 초월하여 계시는 분입니다. 신약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나오는데, 예를 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 분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아버지’처럼 친밀한 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신다고 말하는데, ‘통촉’(יֶחֱז֑וּ)한다는 것은 ‘보다, 두루 살피신다’는 뜻이고, ‘감찰한다’(יִ֝בְחֲנ֗וּ)는 말은 ‘test, examine, prove’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테스트하고, 조사하고, 분석해서 증명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다윗은 아무리 적들이 화살을 겨누고 있고, 나라의 기초가 흔들리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해도 그 어떠한 피난처보다도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친구들의 권면을 뿌리치고 하나님께 피하기로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5절을 보면,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라고 말합니다. 4절에서 사용했던 ‘감찰’(יִ֫בְחָ֥ן)이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오는데 이 단어가 악인들에게 적용될 때는 악인들의 행위를 심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의인들에게 적용되면 의인을 단련하고 돌보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6절을 보면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감찰하신 결과인데, 마치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처럼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으로 악인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반면 7절을 보면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의인을 감찰하신 결과인데, 5절에서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라는 말씀과 정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정직하고 의로운 자,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마침내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볼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참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사실을 잘 알고, 믿었던 다윗은 산으로 도망하기보다는 하나님께 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상치 못했던 시련과 어려움이 닥칠 때 우리는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에 빠지게 됩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멍하니 하늘만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다윗의 시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방이 우겨 싸인 것처럼 보일 때도 하늘은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사랑과 자비의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피하여 끝까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하나님께 피하게 하소서.
2. 하나님의 감찰하심을 기억하게 하소서.
3.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사람, 의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