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4:5~6,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베드로전서 4:5~6,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베드로는 세례를 받은 성도들은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2절)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정욕’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3절)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7절 이하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 중간에 5절과 6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5절을 보면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들’은 바로 앞에서 ‘사람의 정욕’을 따르며 살았던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들도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 앞에서 서게 된다고 말합니다. 결국 ‘모든 사람’은 그 사람이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살아있는 사람이건 죽은 사람이건 차이가 없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대로 고하리라’고 말하는 것은 그가 살아왔던 모든 것이 숨김없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한편으로는 위로의 말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왔던 삶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고 계신다는 의미로 보면 분명 위로의 말씀인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지나왔던 삶에서 분명히 부끄러운 일들도 많이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까지도 ‘사실대로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이사야 43장 18, 19절에서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지나간 때’(3절)의 일들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지만 ‘사람의 정욕’을 따라서 살다가 죽은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은 죽음 이후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는데, 문제는 6절을 보면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죽은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연옥’을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중세 시대에는 무덤 위에서 죽은 자를 위해 세례를 베풀기까지 했었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근거가 6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말은 죽은 이후에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동안에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사실 베드로전서 3장 19절에서도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4장 6절에도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라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면 둘 다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오해들이 생기게 된 것인데, 좀 더 정확하게 본문을 살펴보면 3장 19절에서 사용된 ‘선포한다’(ἐκήρυξεν)는 단어는 ‘지식과 정보를 전한다, 설교한다는 의미의 κηρύσσω’입니다. 그래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신’ 것은 이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4장 6절에서 ‘복음을 선포한다, 전파한다’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전형적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할 때 사용하는 ‘εὐαγγελίζω’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복음이 전파되었다’(εὐηγγελίσθη)는 단어의 시제가 과거에 일어난 행동을 묘사하는 ‘부정과거수동태’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에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중에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기 전에 죽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임박한 재림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이 매우 임박했다고 믿었는데, 문제는 주님께서 재림하기 전에 죽은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전서 3장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재림하기 전에 죽은 사람들의 죽음을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여기서도 이미 죽은 사람들 중에서 복음을 듣고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5절에 나오는 ‘그들’과는 달리 6절에 나오는 ‘죽은 자들’은 믿음으로 살다가 ‘죽은 그리스도인들’인데, 이들은 ‘육체로는 사람의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살아서 복음을 믿었던 사람도 믿지 않고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육신의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에는 똑같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다가 죽은 사람들은 영원한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을 믿다가 죽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는데, 표준새번역에서는 ‘영으로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번역하였는데,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육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사람들도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면 우리가 신앙을 그리스도인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삶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럼 없이 살게 하소서.
2. 복음을 믿고 살다가 복음을 믿는 사람으로 죽게 하소서.
3. 영생의 소망으로 영원한 천국의 삶을 누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