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1~8,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시편 4:1~8,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셀라)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은 시편 4편인데요, 4편도 3편과 같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치는 상황에서 쓴 시입니다. 사무엘하 13장을 보면 다윗의 세 번째 아들이었던 압살롬은 누이였던 다말이 (배다른 형제) 암논에게 추행을 당하자 보복하기 위해 암논을 죽이고 도망(망명)쳤습니다. 그 후에 압살롬은 다윗과 화해하고 왕궁으로 돌아왔지만 머지않아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반역을 피해 도망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이때가 다윗이 가장 큰 고통을 겪었던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3편이 아침의 기도라면, 4편은 ‘평안히 눕고 잔다’(8절)라는 표현 때문에 이스라엘의 공식 예배시 저녁 기도로 이용되는 시입니다.
먼저 1절,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라고 말하는데, ‘의의 하나님’은 ‘정의롭게 판단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다윗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정의로운 하나님의 판결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재판을 청구하는 심정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실 기도의 핵심적인 주제가 하나님의 호칭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전쟁’때는 ‘평화의 하나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는 ‘위로의 하나님’, 그리고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치유의 하나님’을 부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다윗은 불의한 상황에서 정의롭게 판단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또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라고 말하는데, ‘곤란’은 ‘좁은 협곡’을 의미하는 단어로, 시23:4에 나오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유사한 표현입니다. 반면 ‘너그럽게’는 ‘넓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좁은 공간’은 고난과 핍박을, 반대로 ‘넓은 공간’은 구원과 풍요로움과 안전을 상징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너그럽게 하셨다’는 동사의 시제가 완료형(과거 시제)인데, 다윗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풍성한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체험을 근거로 현재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확신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신앙 체험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의 신앙 체험은 과거의 일로 끝나지 않고 현재의 어려움과 문제를 극복하는 길잡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2절에는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라고 말합니다. ‘인생들아’라고 부르는 대상은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의 편에 합류한 배신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한다’는 것은 압살롬과 함께 반역을 꾀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다윗은 3절,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비록 비참하게 도망 다니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셨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택하다’는 말은 단순한 ‘구별이나 선택’이 아니라 ‘존귀한 자로 구별하여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말할 수 없는 극심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과거에 베풀어 주셨던 은혜가 있고,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셨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1절부터 3절까지는 과거의 신앙 체험을 중심으로 말했는데, 4절과 5절에는 현재에 대해 말합니다. 4절을 보면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떨며’는 ‘분노한다’는 뜻입니다. 분노가 일어나서 몸이 떨릴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쳐야 했던 다윗은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분노의 지배를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분노의 지배를 받으면 처음에는 정당한 분노, 의로운 분노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의 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화가 나더라도 그것이 범죄가 되도록 하지는 말자, 나 혼자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전가시키지 말자’라고 다짐했던 것입니다.
또한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다윗이 분노를 확대재생산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향해 명령하는 것입니다. 사실 ‘분노’만큼 강력한 에너지는 별로 없습니다. 분노는 다른 사람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다른 사람에게 가장 쉽게 전염되고,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분노는 엄청나게 증폭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분노가 ‘범죄’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분노를 잠재워야 합니다. 어쨌든 다윗은 고난과 어려움의 순간에 가장 조심하고 피해야 하는 것이 분노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말하는데, 그것은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실 화를 내지 않고 참는 것은 사람마다 편차가 있기 때문에 얼마나 참아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참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분노)를 ‘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참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로운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라고 말합니다. ‘여러 사람의 말’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윗을 향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다윗이 선한 사람이라면 지금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수군거리면서 비난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와같은 비난과 모욕에 대해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나타나시면, 주님의 얼굴 빛을 비춰주시기만 하면 모든 상황이 달라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7절,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라고 말합니다. 추수를 마친 후에 농부가 누리는 포만감, 만족감, 행복감보다 더 큰 기쁨이 다윗의 마음 속에 깃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8절을 보면,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미래형인데, 하나님께서 나를 살게 하시는 분이니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도 이제부터는 평안히 두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소서.
2. 분노에 사로잡히기 보다는 오히려 의의 제사를 드리게 하소서.
3. 주님의 얼굴 빛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