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8~9,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8~9,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지난 시간에는 아름다운 단장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단장’(κόσμος)은 단순히 외모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4)고 권면하였습니다.

 

오늘은 앞서 218절부터 시작된 권면을 마무리 하면서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먼저 8절을 보면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5개의 형용사가 나옵니다. 첫 번째로 마음을 같이하여’(ὁμόφρονες)는 어떤 사건에 대해 동일한 의견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같은(ὁμός)+이해(φρήν)’를 뜻합니다. 그래서 각자가 서로에 대한 동일한 관심을 가지며 영적인 끈으로 연합되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저마다의 지식과 경험이 다르고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같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특히 신앙 공동체 안에서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앙적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동정하며’(συμπαθεῖ)함께(σύν)’고통을 받는다, 경험한다(πάσχω)’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고통을 함께 공유한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는 개인의 명예와 지위를 높이 평가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혹한 경쟁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딛고 이기는 것이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픔과 경험을 함께 나누는 것을 더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신앙공동체 구성원들이 마음을 같이하기 위해 전제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마음 동정하는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형제를 사랑하며’(φιλάδελφοι)인데, 이 단어는 익숙한 단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어쨌든 이 단어는 사랑하다(φίλος)+형제(ἀδελφός)’의 합성어인데,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형제 사랑은 일반적으로 가족간의 유대감이나 충성심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친족간의 형제애로 그치지 않고 인종적, 사회적, 경제적인 장벽을 뛰어넘어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결속되는 형제애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로 불쌍히 여기며’(εσπλαγχνοι)좋은(εὖ)’창자, 마음(σπλάγχνον)’의 합성어로 일반적으로는 동정한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인데, 고대인들은 창자와 같은 내부 장기가 인간의 감정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좋은이라는 접두어를 사용해서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감정 중에서 최고의 감정은 다른 사람을 연민하면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성도들이 서로를 향해 불쌍히 여기는공감적인 사랑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겸손하며’(ταπεινόφρονες)겸손한’(ταπεινός)마음, 이해’(φρήν)의 합성어입니다. 사실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겸손은 미덕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명예를 드러내면서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7절에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말했는데, 이렇게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에게 겸손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사실 이렇게 보면 베드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하는 내용은 당시의 사회적 규범이나 가치관과는 매우 다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속적인 공동체는 세속적인 성공을 위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가치관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가치관과 다른 기독교의 가치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9절을 보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누가복음 627, 28절에서 예수님께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나타냅니다. 특히 갚는다’(ἀποδιδόντες)는 말은 당연히 갚아야 할 것을 되돌려 준다는 의미이고 ‘(복을) 빈다’(ελογοντες)는 말은 저주한다’(λοιδορίαν)는 말의 반대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이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은 원수를 사랑하며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이 복을 이어받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어받는다는 말은 신앙의 선배들이 받았던 복을 우리가 계속해서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고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복을 비는 것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게 하소서.

2.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게 하소서.

3.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복을 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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