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20~22, 너희를 구원하는 표

베드로전서 3:20~22, 너희를 구원하는 표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15절에서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19절에서는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해석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영으로 가신다는 말의 의미와 옥에 있는 영들은 누구를 가리키는지, 또한 영들에게 선포하신다고 했는데 어떤 것을 선포하셨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합니다. 그래서 이 본문과 관련해서 많은 주장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영으로 가셨다는 말은 18절에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는 말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사실 육체이라는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에 몸의 부활을 하신 것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로만 부활하신 것처럼 한정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육체와 영은 예수님의 몸과 영혼을 분리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임과 살리심의 극명한 대조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어쨌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찾아가셨는데, 지난 시간에 설명 드린 것처럼 이것은 연옥처럼 죽음 이후에 임시적인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옥에 있다(ἐν φυλακῇ)’는 말은 정관사가 없기 때문에 어떤 구체적인 장소를 나타내기 보다는 갇힌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옥에 있는 영들은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는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20절에서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영으로 가셔서 만나신 옥에 있는 영들은 노아의 홍수 심판으로 멸망 당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이들을 찾아가셨을까요? 그 이유를 ’(ἐκήρυξεν)라는 단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선포하다, 설교하다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미 홍수 심판으로 멸망 당한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설교하신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절 하반절을 보면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명외에는 모두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이미 심판을 받은 사람들일텐데 왜 예수님께서 이들을 다시 찾아가신 것일까요?

 

여기에는 두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첫째는 예수님의 선포는 지난 시간에 설명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들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끝없는 사랑을 지니신 분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다함이 없는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어떠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 심판을 받아 지옥에 있는 사람들까지 찾아가셔서 말씀을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또다른 해석은 여기서 선포가 복음을 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메시지나 정보를 전달한다는 뜻이인데, 왜냐하면 복음을 전한다유앙겔리조라는 단어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복음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심판에 대한 확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20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겨우 여덟명뿐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방주를 예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노아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새로운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1절을 보면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고 말합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 사용된 은 심판의 도구였는데, 이제는 구원을 상징하는 세례에서 사용하는 물로 구원의 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홍수 심판의 물과 세례의 물을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니다.

 

특히 세례구원의 표라고 말하는 이유는 세례의 실체가 곧 구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세례를 받으면 무조건 구원받는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인데, 어쨌든 세례의 실체는 곧 구원입니다. 왜냐하면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는 것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라고 말하는데, 세례가 단순하게 몸의 더러움을 씻는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령의 죄를 속죄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인간은 중생의 삶을 살면서 선한 양심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22절을 보면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19절과 대비되는 표현인데, 예수님께서는 옥에 있는 영들에게까지 내려가셨을 뿐만 아니라 하늘에 오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영적인 존재들인 천사들조차도 예수님께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향해 소망에 관한 이유를 질문할 때 우리는 두가지로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말씀을 선포하는 분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표로 세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세례를 받는 회중들을 향해 확실한 소망에 관한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2. 구원의 표를 통해 믿음의 확신과 성장이 있게 하소서.

3. 하나님을 향하여 선한 양심의 간구를 드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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