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14~19,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베드로전서 3:14~19,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베드로전서 3장 13절에서 베드로는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아무도 우리를 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바라보시고 또한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 성도들은 고난과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적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베드로는 14절에서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는 말은 이미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10절에서 말씀하신 것인데, 이처럼 성도들은 ‘복 있는 자’로 ‘의를 위한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라도 두려워하거나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15절을 보면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한다’는 말은 ‘신앙 고백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한다’,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한다’, ‘그리스도를 거룩하신 분으로 고백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박해로 인해 고난을 받게 될 때는 먼저 주님에 대한 신앙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는 것은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경우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소망에 관한 이유’에 대한 질문은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만 주어졌던 것은 아닙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여기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가 되면서 보편성이 무너지고, 절대적인 가치 기준이 사라지면서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소망의 근거에 대한 혼돈과 회의적인 생각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망에 관한 이유’를 준비할 때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온유와 두려움’은 한편으로는 확신에 찬 부드러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외하는 마음인데, 왜냐하면 자칫 변론하는 과정에서 자기 주장이나 감정섞인 반응을 보이면 상대방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확신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태도를 지니고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진실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절을 보면,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합니다. ‘선한 양심’은 사전적 의미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인 인간이 지니고 있는 도덕적인 의식과 영적인 의식이 결합된 양심’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쉽게 말하면 ‘순수한 마음, 한결같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와같은 ‘선한 양심과 선행’을 통해 ‘욕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한 일을 도모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했던 진정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17절을 보면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이 고난을 받는 것은 자신이 행한 악의 결과이며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선을 행한 사람들이 고난을 받는 것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고난인데, 18절과 19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고 말합니다.
사실 19절은 기독교 난제 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옥’이 ‘지옥’이나 ‘연옥’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가톨릭에서는 ‘연옥’설의 성경적 근거를 이 구절에서 찾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톨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순교자와 같이 아주 특별한 분들을 제외하고는) 그 영혼이 연옥에 머물게 되는데, 거기서 살아 생전에 지은 죄가 씻어질 때까지 연옥에 머물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의 죄를 스스로 씻을 수 없기 때문에 후손이나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위해 공덕을 쌓으면 연옥에 있는 사람이 빨리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중세시대에 면죄부를 팔고 샀던 이유가 연옥에 있는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옥’에 대한 신학적인 논쟁이 아니라 선을 행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말씀을 선포하셨다는 사실인데, 사실 예수님께서는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죄를 위하여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지옥에 있는 영들을 구원하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에게 “당신이 여전히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여기에 대해 베드로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을 이루기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고, 심지어 지옥에 있는 영들까지 찾아가서 복음을 선포하는 분입니다.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한편 강도에게 낙원의 길을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구원의 사역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이고, 예수님에게 소망을 두는 이유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그리스도를 진실한 마음으로 주로 고백하게 하소서.
3.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