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10~13,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베드로전서 3:10~13,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 묵상 제목은 10절에 나오는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입니다. 베드로는 시편 34편 12절에 나오는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라는 구절을 인용하였는데, ‘생명(ζωὴν)을 사랑(ἀγαπᾶν)’한다고 할 때 ‘생명’은 육체적인 생명 뿐만 아니라 영적인 생명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생명에 대한 원초적이고 궁극적인 사랑을 나타내고, 또한 생명을 사랑하려면 생명을 부여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생명을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생존하는 생명이 아니라 종말론적이고 우주적인 의미에서의 생명, 곧 ‘영생, 완전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또한 ‘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고 말하는데, ‘좋은 날’(ἡμέρας ἀγαθὰς)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날은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가 넘치는 날이고, 생명의 기운이 충만한 날입니다. 그런데 이런 날을 보기를 ‘원하는(θέλων) 자, 갈망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사람은 앞서 8, 9절에서 생각해 본 것처럼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복을 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이와같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는데, 먼저 10절 하반절을 보면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라고 말합니다. ‘혀를 금한다’는 말은 히브리어에서 ‘안식하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인데, 안식일에는 모든 노동을 중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안식은 무작정 노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면서 영혼의 쉼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마찬가지로 ‘혀를 금한다’는 말은 ‘통제한다, 다스린다’는 뜻으로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중단하지만 반대로 해야 할 말은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베드로는 중단해야 하는 말을 먼저 언급하는데, 첫 번째는 ‘악한 말’이고 두 번째는 ‘거짓’입니다. 먼저 ‘악한 말’(γλῶσσαν ἀπὸ κακοῦ)은 정확하게 말하면 ‘악으로부터 나오는 말, 악에서 비롯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악한 말’은 ‘악을 목적으로 하는 말’, ‘악의 영향을 받은 말’, ‘악을 확장시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거짓을 말한다’(δόλον)는 것은 ‘속이는 말, 배신하는 말, 간계를 써서 유인하는 말’인데, 이렇게 ‘말’에 대해 강조하는 이유는 야고보서 3장 8절에서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과 혀’의 문제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심각한 도전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11절을 보면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악에서 떠난다(ἐκκλινάτω)’는 말은 ‘악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인데, 특히 10절에서 ‘악한 말과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혀를 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소극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지만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악한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좋은 말,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특히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라고 말하는데, 인간은 악과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화평이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회복하는 것이 ‘선’이고 ‘선의 결과’가 ‘화평’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따르고 추구해야 하는 삶은 ‘선과 화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12절을 보면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주의 눈’이 의인을 향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삶을 보호하고 감찰하신다는 뜻이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신다’는 말은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말입니다. 반면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한다’고 말하는데, ‘주의 얼굴을 대한다’는 말은 ‘얼굴을 돌리신다’(표준새번역) 혹은 ‘노려보신다’(공동번역)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나타내는 히브리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13절을 보면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라고 말하는데, ‘열심으로’는 ‘열정을 가지고’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은 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삶을 바라보고 계시고 또한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함께 묵상하였습니다. 먼저 악한 말과 거짓을 중단하고 악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또한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면서 평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응답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게 하소서.
2. 우리들의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않게 하소서.
3.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