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9~12,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사람
야고보서 1:9~12,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사람
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앞에서 야고보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기 때문에 시험을 당하더라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인내는 인간의 능력으로만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되, 믿음으로 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 ‘지혜’의 구체적인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먼저 9절을 보면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낮은 형제’(ὁ ταπεινὸς)라는 말은 경제적으로 가난하거나 사회적인 신분이 낮다는 의미도 되지만 신앙적인 의미에서 ‘겸손하다 혹은 자세를 낮춘다’(humble, lowly, in position or spirit)는 의미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신분이나 물질적 상태가 낮다는 의미가 아니라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말하는데, ‘높음’(ὕψει)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아짐, 존귀하게 됨’(Height, high place, exaltation)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고난으로 인해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인 어려움을 당하고 비천한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인내 할 수 있으려면 주님께서 우리를 영예로운 삶으로 올려주신다는 사실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도 인내하면서 오히려 ‘높음’을 자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10절을 보면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부한 자’(πλούσιος)는 9절에서 ‘낮은 형제’와 대조되는 표현으로 물질적으로 부유하거나 사회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살면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을 나타냅니다. 사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유함으로 인해 자칫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부유한 그리스도인들도 지혜가 필요한데, 그것은 지상에서 소유한 부가 자신을 죄에서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고, 그래서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간다는 말처럼 자신이 소유한 부유함이 일시적이며 한계적임을 깨닫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8절에서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향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낮아짐을 자랑하는 지혜를 간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야고보는 이와같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사야 40장 6, 7절에 나오는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라는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데, 아무리 부유하고 넉넉한 사람이라도 그 부유함을 영원히 누릴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마치 꽃이 시드는 것처럼 부유함 뿐만 아니라 생명까지도 곧 시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11절을 보면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고 말합니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분다는 말은 태양 빛이 작열하는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남동풍(시로코)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쇠잔하다’는 말은 ‘불을 끈다’는 의미로 지상에서 누리는 부와 영화가 순식간에 사그러지는 것을 나타냅니다. 결국 뜨거운 시로코가 불면 채소와 같은 식물들이 말라 죽고 꽃도 떨어지는 것처럼 부유한 사람들이 누리는 외적인 치장들이나 화려함도 순식간에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가 말하는 핵심은 낮은 자와 부한 자를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라 두 종류의 사람들 모두에게 주는 권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낮은 사람이 자신의 낮음에 대하여 온전한 지혜가 없거나 부한 사람이나 자신의 부유함에 대한 온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둘 다 ‘인내를 온전히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낮은 자가 주님께서 높이신다는 것을 알고, 부한 자가 자신의 부유함의 약함을 깨달아 낮아지는 지혜를 얻는다면 이들은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든지 여러 가지 시험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인내를 성취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12절을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시험’(πειρασμόν)은 2절에서 말했던 ‘시험’과 같은 단어로 믿음의 연단을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는 시험입니다. 그래서 13절부터 언급하는 ‘시험’과는 의미가 완전히 다른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는 이유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때문인데, ‘면류관’은 일반적으로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의 면류관’(στέφανον τῆς ζωῆς)은 시험과 박해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주님께서 높이시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언제나 겸손을 잃지 않게 하소서.
3.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