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4~8,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야고보서 1:4~8,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앞에서 야고보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더라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와같은 시험이 믿음의 시련이라면 그것은 곧 인내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계속해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온전히’(τέλειον)라는 말은 ‘끝’(τέλος)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온전히 이루라’는 것은 ‘중간에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끝까지 참아야 하는 이유는 인내가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온전하다’는 말은 앞에서 ‘온전히 이루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는 ‘흠이 없는(תָּמִים) 재물’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흠이 없는 온전함’을 나타냅니다. 또한 ‘구비한다’(ὁλόκληροι= ὅλος(whole)+κλῆρος(inheritance)는 말은 ‘신체의 각 부분이 모두 건전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부분에서 골고루 갖추고 있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하지만 인간의 인내심은 한계가 있습니다. 참는다고 참다가도 어느 순간에 폭발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인내심만으로는 이와같은 목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5절을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지혜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온전한 인내에 도달할 수 없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역대하 1장 10절에서 솔로몬이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라고 기도했습니다. 솔로몬은 최고의 권력의 자리에 있었지만 자신의 힘만으로 온전한 재판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분임을 믿기 때문인데, 여기서 ‘후히(ἁπλῶς) 주신다’는 말은 ‘풍성하게 주신다, 넉넉하게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응답하신다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후히 주신다’는 말은 다른 의미에서는 ‘진심으로, 숨겨진 동기가 없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진실하게 응답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도 진실해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꾸짖지 아니하신다’는 말은 이와같은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반복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관대하게 응답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염려하거나 걱정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6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구한다는 말은 지혜를 구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약속을 확신하는 ‘믿음, 신뢰’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1장 21, 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 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와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의심하는 자’가 되기 쉬운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여기서 ‘의심한다’는 말은 ‘사이’와 ‘분리시키다’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에 대해 양쪽에서 저울질하면서 마음이 분리되어 있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8절을 보면 이것을 직접적으로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의심하고 두 마음을 품는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다’고 말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과는 정반대로 바람이 불면 이리 저리 흔들리는 바다 물결처럼 변덕스러운 마음으로 상황에 따라서 이리저리 흔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7절에 나오는 것처럼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는데, 물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의심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의심을 극복하고 이겨낼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지혜를 얻을 수 있고, 마침내 인내를 온전히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8절에 나오는 것처럼 ‘두 마음을 품’게 되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가 될 수 밖에 없는데,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두가지 방법이나 생각 중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정함이 없다’는 말처럼 ‘불안정’(공동번역)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삶에서 꼭 필요한 ‘지혜’를 추구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내를 온전히 이루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흔들림 없이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아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온전한 인격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