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3:12~15,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히브리서 13:12~15,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앞서 살펴본 히브리서 13장 11절을 보면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이 희생 제물의 피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들어갈 때 희생 제물의 나머지 사체를 영문 밖에서 불살랐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영문 밖’(ἔξω τῆς παρεμβολῆς)은 ‘막사, 군대의 진지, 성’을 의미하는데 예수님께서 희생 당하신 ‘골고다’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 말은 구약의 제사에서는 버려지는 장소가 ‘영문 밖’이었는데 오히려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워지고, 구속의 은총이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부분을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먼저 12절을 보면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고 말합니다. 희생 제물이 ‘영문 밖에서’ 버려진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성문 밖’(ἔξω τῆς πύλης)에서 고난(ἔπαθεν)을 받으셨는데, ‘성문 밖’은 말 그대로 예루살렘 성문 밖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11절과 연결시켜 보면 구약의 제사에서 버려진 짐승의 사체들처럼 예수님께서도 성문 밖인 골고다에서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예수님의 고난은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희생 제물과 예수님은 거룩함에서 배제되어 ‘영문 밖, 성문 밖’에서 수치를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13절을 보면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영문 밖’(ἔξω τῆς παρεμβολῆς)은 어디일까요? 조금 전에도 설명했던 것처럼 그곳은 거룩함에서 배제된 곳, 버려진 곳, 고난을 받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에게 거절당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로부터도 배척 당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영문 밖’에 있는 골고다에서 죽으셨는데, 과거에는 거룩하다고 여겨졌던 ‘영문 안’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문 밖’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 역전이 일어났습니다. 전에는 부정하였던 영문 밖이 도리어 거룩한 곳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영문에서 쫓겨나 영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아직도 옛 언약과 유대교의 범주인 ‘영문 안’에 머물지 말고 새로운 언약과 그리스도께서 계신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기자가 지금까지 모세와 예수님, 천사와 예수님, 구약의 율법과 믿음을 비교하면서 말하려고 했던 가장 핵심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영문 밖으로 나아갈 때는 ‘치욕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치욕’(ὀνειδισμὸν)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치욕을 의미하는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치욕은 고린도전서 1장 23절을 보면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십자가와 십자가의 죽음이 치욕적이었던 이유는, 먼저 이방인들에게는 십자가가 사회적으로 흉악한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가하는 최고의 형벌이었다는 점에서도 수치스러운 일이었지만 자칭 신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예수님의 죽음을 믿는 것은 가장 ‘어리석고 미련한’(고전 1:18) 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에게도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를 믿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의미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는데, 왜냐하면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가장 치욕적인 형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치욕을 ‘짊어지고’(φέροντες)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고 말하는데, ‘짊어진다’는 말은 ‘견디다, 수행하다, 가져가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난과 고통을 끝까지 견디면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려는 핵심은 구약의 희생 제사에 머물지 말고 온전한 희생 제사의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야 하는데, 유대인들이 상번제를 통해 매일 희생 제사를 드리고, 안식을 통해 매 안식일마다 희생 제사를 드리고, 월삭을 통해 매 월마다 희생 제사를 드리고, 대속죄일을 통해 일 년에 한 차례씩 희생 제사를 드렸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께서 가신 영문 밖으로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교의 굴레, 기존의 종교적인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와같은 수치스러운 ‘치욕’을 짊어지고 주님께서 계신 영문 밖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이유는 14절을 보면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히브리서 11장 10절과 16절에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 땅은 영원한 본향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가 스쳐 지나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현실의 치욕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영문 밖에 계신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15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예수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예수님 때문에’라는 뜻도 되고, ‘예수님을 통하여’라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동물의 희생 제물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을 통하여 찬송의 제사를 드린다는 말도 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영문 밖에서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비로소 하나님께 찬송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도 됩니다.
어쨌든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드리게 된 성도들은 이제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입술의 열매’라는 것은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말’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이제부터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증언하는 사람이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와 찬양을 하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예수 그리스도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에 계신 주님께로 나아가게 하소서.
2. 장차 올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찬송의 제사를 드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증언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