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1:9~16,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시편 91:9~16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15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은 시편 91편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시편이 시인이 처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거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면 시편 91편은 조금 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원할 때 옆에서 조언하며 격려해 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성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제사장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신시켜주는 시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으로 보면 목회적인 돌봄을 주요한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적으로 볼 때 1절부터 13절까지는 하나님의 보호아래에 거하는 자가 누리는 안전함에서 말하고 있고, 14절부터 16절까지는 하나님의 보호를 요청하는 예배자들에게 제사장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해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하나님을 지존자’, 그리고 전능하신 자로 부릅니다.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도 비교될 수 없는 분, 가장 높으신 분, 불가능한 일이 없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3절부터 8절까지는 이러한 하나님께 거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세상의 어떠한 위협이나 난관에 봉착해도 동요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특히 4절을 보면,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에서 날개는 하나님의 법궤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품어주고 보호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어미 새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 날개로 덮듯이 지존자이시며 전능자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안전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은 모든 두려움과 공포의 상황 속에서 담대함과 평안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5절부터 7절까지를 보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이 미치지 않는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재앙이 닥쳐오더라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7절을 보면 천명, 혹은 만명이 그 재앙으로 넘어지더라도 하나님이 보호하시기 때문에 그 재앙이 나를 넘어뜨리지는 못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어떠한 어려움과 재앙을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인들에게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이 세상의 어려움과 재앙 앞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재앙조차도 하나님의 섭리와 뜻 가운데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과 재앙이 멸망이나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주어지는 은혜의 통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온전한 치유를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욥인데, 욥은 극심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의 치유하심과 회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오늘 본문인 9절부터 13절까지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안전하게 돌보신다는 약속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먼저 9절을 보면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이 사람은 하나님의 집을 자신의 거처로 삼고,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동행하기를 선택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0절을 보면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재앙이나 불행도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시인에게 아무런 재앙이나 불행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15절을 보면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람이 간구를 하게 되는 이는 깊은 시련을 만났기 때문이고, 그를 건저주신다는 것은 이미 환난을 당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10절에서 아무런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재앙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일로 말미암아 실족하게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1절을 보면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온갖 시험과 유혹으로부터 실족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키고 돌보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2절을 보면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 구절은 마태복음 46절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마귀가 인용했던 구절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지 않하시는지를 시험해보라고 유혹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그 말씀대로 절벽에서 뛰어보라고 시험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환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마귀는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도 말씀의 왜곡에 동참하도록 예수님을 유혹하는 도구로 사용하려고 하였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시편 91편 말씀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갖고 있지 않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믿습니다. 아멘하면서 뛰어 내렸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맹목적인 믿음을 좋은 믿음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좀 한다는 사람들이 이런 시험에 쉽게 넘어가는데, 자기에게 유리하고 좋은 것만 골라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철썩같이믿고, 반대로 불리하고 불편한 말씀들은 요리조리 피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신과 섬김의 명령은 가급적 외면하고, 축복을 주신다는 말씀만 아멘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축소하거나 왜곡하면 말씀을 주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질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이 마귀가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 마귀의 사명이기 때문에 마귀는 말씀을 이용해서 질문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계속해서 14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사랑한즉’(חָ֭שַׁק)‘to be attached to, love’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완전히 결합된 사람,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뢰를 갖고 있는 사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좋은 예가 요한복음 157절에서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면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바로 이와같은 의미입니다.

또한 15절을 보면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합니다. 14절에서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시고 높여주신다는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는 이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환난을 당할 때 건져주신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16절을 보면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라고 말합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구원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모두 하나님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지존자를 자신의 거처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과 사랑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게 하소서.

2.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하나님의 사랑과 건지심과 구원을 바라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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