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2:7~13,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히브리서 12:7~13,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믿음의 여정을 살면서 피곤하여 낙심하지않으려면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사랑으로 주시는 징계와 채찍질을 받을 때 낙심하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계속해서 이와같은 징계를 잘 견디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먼저 7절을 보면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는 말은 개역개정 성경만 보면 그 뜻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을 참고해 보면 주께서 여러분을 훈련하시거든 그것을 견디어 내십시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징계를 받아도 참아야 한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 다음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대우하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미 5절과 6절에서 잠언서 말씀을 인용하면서 언급했던 내용을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가 이와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고난과 박해를 받으면서 피곤하여 낙심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와같은 고난과 박해가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나 처벌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훈련하는 징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같은 징계를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외면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도들을 아들로 대우하고 인정한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와같은 징계를 받지 않으면 8절을 보면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인데, 징계는 특별히 문제가 있거나 잘못을 범한 사람들만이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징계를 받지 못하는 사람을 사생자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노예나 첩의 아들을 낮추어서 말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은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징계를 받는 것은 불행하거나 불평해야 할 일이 아니라 감사해야 할 일이고, 오히려 징계를 받지 않는 것은 상속에서 배제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징계를 받는 상황에서도 성도들은 9절을 보면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합니다. 육신의 부모가 자녀를 훈육을 할 때 자녀는 마땅히 부모를 존경하고 공경해야 하는 것처럼 영혼의 어버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육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더욱 더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육하는 목적은 10절을 보면,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함인데, 여기서 하나님의 훈육의 목적 첫번째는 우리의 유익’(συμφέρον)을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유익이라는 단어는 ‘to bring together, to be profitable’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유익이 더해지도록 한다는 뜻으로 영적인 성장과 성숙을 더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두 번째 목적은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사실 거룩은 인간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이와같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성화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하나님과의 완전한 연합으로 종말론적 구원에 이르러서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훈육의 목적은 성도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징계를 당하는 상황에서는 누구나 당황하고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11절을 보면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보인다고 말합니다. 막상 훈련을 받는 상황에서는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크고, 기쁨보다는 슬픔이 앞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의와 평강의 열매10절에서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연단을 통해 궁극적인 구원이르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삶의 결과, 열매의와 평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훈육을 견뎌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들을 향해 12,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사야 353절은 인용한 것인데 앞서 3절에서 피곤하여 낙심에 빠진 것과 마찬가지 의미로, 고난으로 인해 소진된 상태에 빠진 성도들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특히 피곤한 손은 손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이고, 연약한 무릎도 고난과 박해로 인해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손과 무릎을 일으켜 세울수 있을까요? 13절을 보면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말합니다. ‘곧은길은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최종적인 목표를 향해 곧은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곧은 길로 가면 혹시 저는 다리라도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어그러진다는 말은 곧은 길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곧은 길로 가면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고침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직면하고 있는 고난과 박해를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썼습니다. 고난과 박해는 분명 성도들에게 괴롭고 슬픈 일이고 피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고난과 박해와 같은 훈련을 받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됨을 인정받는 기회라고 말하면서 끝까지 견디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하나님의 훈육을 인내함으로 감당하게 하소서.

2. 하나님의 훈육이 하나님의 자녀됨의 특권임을 알게 하소서.

3. 우리를 훈육하시는 하나님께 복종하게 하소서.

4. 우리의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 주소서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1】 마태복음 16:13~20, 교회의 시작-이 반석 위에

디모데전서 3:8~10,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 3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2】 사도행전 11:25~30, 그리스도인

히브리서 3:7~11,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사도행전 5:12~42, 능욕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는 기쁨

디모데전서 3:1~3,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 1

디모데전서 1: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야고보서 1:1~3,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데살로니가후서 3:7~9,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데살로니가후서 3:3, 미쁘신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