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2:26~29, 은혜를 받자
히브리서 12:26~29, 은혜를 받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히브리서 12장 26절을 보면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 때’는 18절 이하에서 언급하였던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현현하실 때 있었던 사건을 의미합니다. 특히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던 상황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이제는 약속’하신다고 말합니다. 시제상으로는 완료시제이기 때문에 과거에 약속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현째까지도 하나님의 약속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학개 2장 6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라는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과거에 있었던 시내산 사건에서는 땅만 진동시켰지만 미래에는 하늘과 땅이 모두 진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를 각각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현재, 미래의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진동’(σείω)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진동’은 한마디로 미래에 벌어질 세상의 변형 혹은 궁극적인 파멸과 같은 우주적 대변혁을 나타내는데, 과거에 있었던 진동은 ‘땅’에만 국한된 것이었지만 미래에는 ‘땅’과 ‘하늘’이 모두 진동하는 우주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27절을 보면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땅’의 진동과 ‘땅과 하늘’의 진동을 대비하였는데, 이번에는 ‘진동하는 것’과 ‘진동하지 않는 것’을 대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땅과 하늘’은 모두 진동하게 될 것이지만 이와는 달리 ‘영존’(μείνῃ)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존’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속성, 혹은 새 하늘과 새 땅과 같은 실체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28절을 보면 그것을 ‘흔들리지 않는 나라’라고 말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모든 것들은 진동으로 인해 사라지게 되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들에게 28절,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라고 말합니다. ‘은혜를 받자’(ἔχωμεν χάριν)는 말은 ‘감사하자, 감사를 드리자’는 의미와 ‘은혜를 붙잡자’라는 두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에서는 ‘감사를 드리자’로 번역을 했고, 개역개정에는 ‘은혜를 받자’로 번역을 했습니다. 어쨌든 두가지 의미가 모두 가능한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새로운 언약에 참여하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진동하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 받았기 때문에 ‘감사를 드리자’고 말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6장 2절에서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또한 성도들은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한다고 말하는데, ‘경건함’(εὐλαβείας)은 ‘경외하며 조심하는 것’(reverence)이고, ‘두려움’(δέους)은 말 그대로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긴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섬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예배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과 함께 조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성도의 삶을 살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29절에는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고 말하는데, 헬라어 본문에는 ‘γὰρ’(왜냐하면)라는 단어가 있어서 우리가 은혜를 받고,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라는 말은 신명기 4장 24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은 인용한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신명기 본문에는 ‘네’(너의) 하나님인데, 히브리서 본문에서는 ‘우리’로 바꾸어서 인용하였습니다. 이것은 시내산에서 현현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언약의 말씀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고의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 즉 주를 볼 수 없고,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찬양하게 하소서.
2.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경건함고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