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7~10, 믿음으로(노아와 아브라함)

히브리서 11:7~10, 믿음으로(노아와 아브라함)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앞서 믿음의 선진들 중에서 아벨과 에녹의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오늘은 노아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히브리서 117절을 보면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고 말합니다.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에 경고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경고’(χρηματισθες)는 노아가 하나님의 응답, 신탁을 받았는데 그 내용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경고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노아의 반응은 경외함(ελαβηθες)으로 방주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경외한다는 것은 문자적으로는 거룩한 두려움을 뜻합니다. 그래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행동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노아가 받은 경고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처럼 이와같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를 믿음으로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노아는 방주’(κιβωτν)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노아가 만든 방주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은 방주라는 단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창세기 614절을 보면 방주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תֵּבַ֣ת인데, 공교롭게도 이 단어는 출애굽기 23절에서 모세를 태웠던 갈대 상자’(תֵּ֣בַת)와 같은 단어입니다. 노아의 방주와 갈대 상자는 규모와 목적이 완전히 달랐지만 같은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둘 사이에 본질적인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운전대가 없다는 사실인데, 비록 방주를 만든 사람은 노아였지만 방주를 인도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고 노아는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다는 말은 노아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고 말하는데, 노아가 믿음과 순종으로 방주를 지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노아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홍수 심판으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은 정죄를 받았지만 노아의 믿음은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8절부터 19절까지는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인데, 앞서 언급했던 아벨, 에녹, 그리고 노아에 대해서는 구약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믿음과 관련해서 언급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창세기 156절에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게 된 것인데, 어쨌든 8절을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말합니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καλούμενος)καλέω’(to call)라는 동사의 현재분사형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자마자 즉시 순종하였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믿음도 노아와 마찬가지로 순종하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2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듣고 즉시 새로운 땅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떠날 때만 해도 약속의 땅이 어디인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나중에 창세기 127절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제서야 그곳이 약속의 땅인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믿음은 가야할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았기 때문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9절을 보면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라고 말합니다. ‘거류한다는 말은 나그네처럼 임시 거주지에서 머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서도 이방의 땅에서 사는 것처럼 나그네로 살았다는 것인데, 실제로 창세기 23장에서 헤브론 근처의 막벨라 밭을 사라의 매장지로 사기 전까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이삭과 야곱도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에서도 나그네처럼 살았지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확실한 약속을 성취한 후에 얻어진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었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을 성취하실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0절을 보면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참고 기다릴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인데, 9절에는 임시 거주지인 장막에서 거류하였다고 말하지만 10절에는 터가 있는 성’, 즉 견고한 집을 대조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준비하시고 직접 세우시는 하나님의 도성을 꿈꾸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지상에서 살고 있을 때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하고, 약속의 땅을 차지하지 못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의 인내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노아의 순종하는 믿음과 아브라함의 인내하는 믿음을 생각해 보았는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서 참된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이와같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하나님을 경외하여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믿음으로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믿음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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