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0:5~9,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히브리서 10:5~9,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히브리서 기자는 앞서 히브리서 103절에서 동물의 피로 드리는 제사는 죄를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기억하게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이고, 그래서 그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5~7절에는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시편 406~8,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는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40편은 원래 다윗의 시입니다. 그래서 는 다윗을 가리키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다윗이 아닌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이유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5) 또한 번제와 속죄제도 기뻐하지 아니’(6) 하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한 몸을 예비하셨는데 그 분이 예수님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스스로 율법을 제정하고 그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께서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말은 명백한 모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제사 자체를 싫어하신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단순히 의식적인 행위만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 하반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구약의 제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고 의식적인 제사 행위만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한 몸을 예비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무엘상 1522절을 보면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낫다고 말씀하셨고, 이사야 113, 14절에서도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호세아 66절에도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셨고, 아모스 522절에도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같은 말씀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만족하시고 열납하시는 제사는 어떤 형식을 갖춘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8, 9절을 보면 5~7절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이 나오는데,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가 율법에 따라 드려지는 것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원하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으시는 이유는 제사제사를 드리는 자의 삶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예가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인데, 창세기 4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5절에는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열납하신 것은 단순히 제물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물과 함께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인격과 삶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형식은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제사를 드리는 행위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인과 가인의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9절을 보면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이와같은 제사와 율법으로는 더 이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첫 번째로 주셨던 율법은 폐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새로운 언약의 시대를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2.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열납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3.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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