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0:26~31, 짐짓 죄
히브리서 10:26~31, 짐짓 죄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말씀 묵상을 돕는 글】
히브리서 기자는 바로 앞에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면서 끝까지 믿음의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사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26절은 생략되어 있기는 하지만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9절부터 시작된 권면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인데, 다시 말해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에 힘써야 하는 상황에서 성도들이 범하지 말아야 할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죄를 범하는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심판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죄’는 26절을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라고 말합니다. ‘짐짓’(εκουσιωs, willfully)이라는 말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죄를 짓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한 ‘죄를 범한’(αμαρτανοντων)의 시제가 현재 분사로서 계속적으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결국 ‘진리를 아는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짐짓 죄, 의도적인 죄’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범하는 경우는 다시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히브리서 6장 4절 이하에서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고 말했던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죄를 범한 경우에는 단순히 용서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결국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래서 27절을 보면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고 말합니다. 고의적이고 의도적인 죄를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사람들은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심판의 불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8절을 보면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이라고 말합니다. ‘모세의 법을 폐한 자’라는 말은 율법을 어기거나 무시한 사람을 나타내는데, 민수기 35장 30절을 보면 살인자를 심판할 때 한 사람의 증인만으로는 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마태복음 18장 16절에도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모세의 율법을 범한 사람도 두 세 증인이 있으면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9절을 보면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는 것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이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얻게 된 구원의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는 성도들의 마음 속에서 감동과 감화를 통해 은혜의 복음을 깨닫고 믿음으로 고백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비웃고 모독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2장 31, 32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같은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고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구약의 율법을 범한 사람도 두 세 증인이 확실한 증언을 하게 되면 심판을 받게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짓 밟고 언약의 피를 부정하고 성령님을 배척하는 사람이 받을 벌은 얼마나 더 심각하겠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죄에 대해서는 30, 31절을 보면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신명기 32장 35, 36절,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참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라는 말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엄중한 경고를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왜냐하면 당시 교회가 핍박을 받았고, 앞으로 핍박을 받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모진 핍박과 고난을 당하면서 끝까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앞장서서 교회와 성도들을 배신하고 배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그 어떤 것보다도 교회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에 대하여 엄중한 심판을 경고하였던 것입니다.
Dick Sheppard는 “교회 성장을 방해하는 최대의 장애는 기독교인이라 칭하는 사람들의 불철저한 생활”이라고 말했는데, 어쩌면 교회의 진정한 위기는 외부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처럼 스스로 내부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로 인해 초래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도 바른 신앙 생활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운 마음과 말할 수 없는 은총에 대한 감격과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지 결코 값싼 은혜처럼 가벼이 취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짐짓 죄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2.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3.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