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0:23~25,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3~25,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23 그러므로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앞서 살펴본 히브리서 10장 22절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이나 제사가 아니라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된 인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먼저 23절을 보면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않고 굳게 잡고”라고 말합니다. 먼저 ‘믿음의 도리’는 복음의 핵심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신앙의 도리에 대한 믿음과 고백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고 굳게 잡고’라는 말은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힘쓰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이와같은 복음의 도리, 믿음의 도리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히브리서 기자가 여기서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으라고 말하는 이유는 자칫 이와같은 신앙이 흔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이 믿는 도리의 확실한 소망을 망각하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염려와 불안과 슬픔, 그리고 사탄의 유혹과 시험이 소망을 빼앗아 갈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도전과 유혹에 맞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흔들리지 않게 굳게 잡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하늘의 소망을 굳게 잡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미쁘다’는 말은 ‘약속을 지킨다, 진실하다,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신실하지 않다면 우리의 믿음은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허무한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불변하고 영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 자체가 신실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24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돌아보아’(κατανοέω)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심사숙고하다, 마음을 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마음을 쓰고 심사숙고해야 하는 문제는 다름 아닌 이웃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방적인 돌아봄이 아니라 ‘쌍방향’의 돌아봄입니다. 그래서 ‘서로’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를 ‘돌아봄’을 통해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말하는데, ‘격려하다’는 말은 (παροξυσμός)는 신약성경에 두 번 밖에 나오지 않는 단어인데, 부정적인 의미에서는 “선동”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5장 39절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는데, 이때 ‘마음을 선동하고 자극하여 심한 다툼’이 일어났다는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격려하다”는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휘젓는다”(Stir Up)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물을 마실 때는 휘저을 필요가 없지만 건더기가 있는 것은 휘저어서 먹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도 이미 성도들의 마음 속에 사랑과 선행이라는 건더기가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과 선행이 전혀 없는 성도들에게 사랑과 선행을 억지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랑과 선행을 지니고 있지만 가라 앉아 있는 마음이 다시 분출될 수 있도록 휘저어주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초대 교회 성도들을 향해 사도들은 이와같은 교훈과 가르침을 주었는데, 베드로전서 1장 22절을 보면 소아시아 성도를 향해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였고, 요한1서 3장 10절에도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디도서 2장 14절을 보면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교회는 격려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교회를 ‘코무니오 상크토룸’(Communio Sanctorum) 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교제 공동체, 격려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서로 격려하면서 사는 것이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25절을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말합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함께 모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 생활은 늘 공동체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인데, 실제로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믿음의 공동체가 탄생되었고,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 복음을 담당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함께 신앙 공동체를 이루면서 믿음을 지켜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은 장작불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잘 타던 불도 흩어 놓으면 식어버리는 것처럼 성도들도 온전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이기를 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면,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담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현하셨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주권자라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와같은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서로를 돌아보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함께 모여서 주님을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믿음의 도리를 굳게 지키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서로를 돌아보면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게 하소서.
3. 모이기를 폐하지 않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