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13,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사도행전 2:1~13,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팟캐스트 방송 듣기)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1절을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헬라어로는 “오순절 날이 성취되었을 때”)라고 말합니다. 오순절과 성령강림 사건이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인데, 오순절은 원래 농경문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절기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9장 1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다다랐을 때가 이집트를 나온 후 50일째 되는 날이었는데,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으면서 새로운 신앙공동체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가는 성령강림의 역사를 이스라엘 계약공동체가 형성된 오순절의 성취와 연관시켜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령강림의 역사가 신약에서 신앙공동체가 형성되는 새로운 날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때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까요? 2, 3절을 보면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라고 말합니다. ‘바람같은 소리’는 청각적인 효과,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은 시각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강림 사건이 인간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실제적인 사건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바람(πνοῆς)은 성령님을 표현하는 ‘프뉴마’(πνεῦμα)와 연결되는 표현이고, ‘불’은 심판과 정화의 능력을 나타내는 성령님의 속성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누가는 이와같은 현상을 ‘성령’(4절)의 역사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또한 2절에는 ‘바람같은 소리’가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을 가득 채웠다고 말하는데, ‘바람같은 소리’가 온 집안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3절)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령 강림의 역사가 모든 사람이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건이면서 동시에 한사람 한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영향을 미친 주관적인 사건임을 나타냅니다.
결국 4절을 보면,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고 말하는데, 누가는 이 사건이 우발적이고 우연히 일어난 현상이 아니라 ‘성령’께서 임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때 가장 특색있는 종교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방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소개되는 ‘방언’은 고린도전서 12~14장에 나오는 방언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방언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으로 방언의 대상이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일반적으로는 언어의 한계로 인해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상황,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서 각기 자기들의 모국어로 알아듣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방언은 고린도전서에서 성령의 은사로 나타나는 방언과는 조금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앞으로 시작되는 교회의 시대에서 성도들은 분열과 단절을 극복하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이룰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의 교통하심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벨탑을 세우려다가 언어가 혼잡해진 것과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바벨탑 사건에서는 인간의 교만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려고 했기 때문에 언어가 나뉘어져 의사소통이 막히게 된 것이었지만 성령강림의 역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언어’로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들이 방언을 통해 전했던 내용은 “하나님의 큰 일”(11절)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제자들의 입으로 전해진 ‘방언’은 ‘하나님의 큰 일’,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사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또 9~11절을 보면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여러 지명들은 앞으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게 될 지역들을 나타내는데, 결국 초대교회가 세계 선교를 위해 문을 열고 세계로 직접 나가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세계 각국으로부터 사람들을 모으셔서 그들에게 방언을 통해 ‘하나님의 큰일’에 관한 소식을 듣게 하셔서 복음의 세계화를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초기 기독교의 세계 선교는 선교사를 파송하기 전에 사람들이 먼저 교회에 모여 성령의 역사를 목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성령 충만한 성도로 살아가게 하소서.
2. 분리되고 단절된 세상에서 복음으로 언어를 소통하게 하소서.
3. 하나님의 큰 일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