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11,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사도행전 1:6~11,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팟캐스트 방송 듣기)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예수님의 승천에 관한 기록은 복음서의 저자 중에서 오직 누가’(24:50~53)만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마가복음 1619, 20절에도 승천 기사가 나오지만 이 본문은 많은 학자들에 의하면 추가된 본문으로 인정되고 있어서 마가복음이 처음 기록될 당시에는 승천 기사가 생략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누가는 사도행전 19절에서 예수님의 승천 기사를 다시 한번 반복하고 있는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승천 기사를 중심으로 나뉘어지고, 승천 사건은 예수님의 시대와 교회의 시대를 구분하는 경계가 되었습니다.

먼저 6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향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이 질문은 1세기 기독교인들의 대표적인 관심사를 반영하는데, 이 질문 속에는 종말의 시기에 관한 문제와 이방인 선교의 타당성에 관한 질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종말의 시기에 관해서 생각해 보면 이 때이니까라는 질문은 임박한 종말에 대한 강한 기대를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종말이 지연되면서 임박한 종말에 대한 기대감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지금까지는 지연되었지만 이때야말로라는 의미로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 회복에 대한 질문은 제자들이 아직도 메시야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사의 지평을 이스라엘로 국한시켜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동안 지상에 머물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아직도 옛 왕국 이스라엘의 복원에 관심이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이와같은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7,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임박한 종말 사상을 가지고 있던 초기 기독교에서 재림의 시기에 관한 질문은 매우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또한 재림의 지연으로 인해 교회는 종말의 시기에 관한 보다 명확한 답변을 요구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재림의 시기에 관한 논의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선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종말의 때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위로 정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알 바가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때와 기한을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때와 기한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귀가 솔깃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때와 기한이 아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8)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재림 예수를 기다리면서 역사의 종말과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였지만 이제는 성령님께서 임하시고, 성령님께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또한 지역적으로도 예루살렘과 유대에만 머물지 않고 구원사의 지평이 온 땅까지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은 승천하신 예수님을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들이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11)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승천하신 예수님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것은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늘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땅의 좌우를 살피며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성령님의 권능을 기다리고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충성스러운 증인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이 기록될 당시 교회는 이 말씀이 꼭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곧 재림하실 것으로 믿고 있었지만 수십년이 지나도록 재림이 실현되지 않자 여러 가지 다양한 반응이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곧 오실 때가 되었으니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자는 생각으로 하늘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생업과 가정을 내팽개치고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경고하였습니다. 또한 재림이 늦어지자 아예 예수님의 재림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하늘만 쳐다보는 사람들에게는 하늘만 쳐다보는 것이 주님을 기다리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말하고, 또한 재림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는 승천을 목격한 그대로 반드시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믿음을 일깨워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시한부종말론과 같은 잘못된 신앙 행태 때문에 재림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님의 재림을 부인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믿고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삶을 종말론적으로 살면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종말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마냥 하늘만 바라보는 것은 참된 기다림이 아닙니다. 참된 기다림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것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여정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때와 기한에 대한 관심보다 성령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한계와 경계를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현재의 삶을 종말론적으로 살게 하소서.

 

 

4. 주님을 기다리면서도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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