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1~5, 새로운 날을 위한 준비

 


사도행전 1:1~5, 새로운 날을 위한 준비 (팟캐스트 방송 듣기)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사도행전 1:1~5절은 사도행전의 서론인데, 1절을 보면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라고 말합니다. 사도행전의 수신자는 [데오빌로]인데 누가복음 13에도 동일한 이름이 나옵니다. 차이가 있다면 누가복음에서는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인데 만약 데오빌로가 실존 인물이라면 그는 로마의 통치 지역 안에서 총독 이상의 직임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반면 데오빌로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라면 Θεό + φιλος,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들에게 헌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같은 해석은 3C 오리겐(Origen) 이후에 등장하기 때문에 실존 인물로 보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어쨌든 흥미로운 사실은 각하’(누가복음)로 불리던 데오빌로가 ‘~’(사도행전)로 불리는 것인데, 누가복음을 받을 때만 해도 초보적인 신앙인이었던 데오빌로가 약 10년 후에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세상적인 지위보다 신앙공동체 안에서 형제, 자매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먼저 쓴 글’(1)이라는 표현은 첫 번째 책’, ‘상권이라는 뜻으로 누가복음을 나타냅니다. 결국 누가는 첫 번째 책인 누가복음을 데오빌로에게 헌정하였고, 두 번째로 사도행전을 집필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을 서로 연결시켜 이해해야 하는데, ‘먼저 쓴 글’(누가복음)에는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1:1, 2)을 기록하였는데, 한마디로 예수님의 공생애를 행하심가르치심이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으로 구원 사역이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는 성령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대, 교회의 시대를 기록하면서 약속하신 것”(4)을 기다리면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5)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시작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요? 몇가지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먼저 “40”(3) 동안의 준비기간이 필요했고, 제자들이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3)셨음을 확고하게 하는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 사건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이신 결정적인 증거이기 때문에 사도행전에는 반복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2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31,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315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하기 위해 함께 모이사.. 약속하신 것을 기다”(4)리라고 말합니다. 표준새번역에는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시는 동안에로 번역하였는데, ‘함께 모이사’(συναλίζομαι)함께 회합을 하면서라는 의미도 있지만 함께 먹으면서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4:41~45과 연결시켜서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같이 모인 사도들에게 부활을 증거하셨고, 그들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함께 모여 밥을 먹었던제자들에게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만나셨던 것처럼 제자들도 함께 모여서 신앙공동체를 이루도록 당부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서문을 통해 한 시대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임박한 종말 사상으로 역사의 지평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구원사의 현재가 지닌 신학적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사도행전을 통해 잘못된 종말 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역사해석을 시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신앙 공동체 안에서 형제와 자매로 살아가는 복을 누리게 하소서.

  

2. 언제 어디서나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소서.

  

3. 함께 모여서 성령님을 기다리는 신앙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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