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9:15~22,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15~22,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팟캐스트 방송 듣기)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앞서 히브리서 9장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제사와 예수님의 속죄 사역을 비교하면서 구약의 제사는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속죄만 가능하지만 예수님의 속죄 사역은 인간의 내면과 양심을 온전히 치유하여 ‘하나님을 섬길(λατρεύειν) 수 있도록’(14절)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죄 사함을 받게 되는지, 피와 속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15절을 보면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새 언약의 중보자’라고 말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기로 약속하신 새로운 언약을 실현하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새 언약을 통해 우리는 ‘영원한 기업의 약속’, 즉 천국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새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16절)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17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유언’이라는 단어는 앞에서 ‘언약’(디아데케)이라고 번역했던 단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언약 대신 ‘유언’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죽음을 전제로 하는 일방적인 ‘언약’이 ‘유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엄격하게 말하자면 언약도 ‘희생 제물’의 죽음을 통해서 언약이 체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유언’과 마찬가지로 ‘죽음, 피’를 통해 체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다고 말하는데, 유언의 효력은 유언의 당사자가 죽은 후에야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18절을 보면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으신 언약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희생 제물의 죽음으로 속죄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행위로 율법을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항상 속죄가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희생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짐승의 죽음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습니다. 그래서 19절을 보면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언약을 체결하기 위해 희생 제사를 드리는 과정에 대해 출애굽기 24장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먼저 언약을 맺기 전에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19절)하도록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은 ‘맹목적인 신앙이나 비이성적인 신앙’이 아니기 때문인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게 하셨습니다. 특히 ‘모든 계명’을 알게 하셨다는 것은 제사장들만 아는 지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에게 모든 계명을 알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온 백성에게 뿌렸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을 20절을 보면 ‘언약의 피’ 즉 ‘계약을 맺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언약을 체결하기 위해 다른 무엇보다도 ‘피를 뿌리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왜냐하면 22절 하반절을 보면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레위기 17장 11절을 보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는 말씀과 관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피흘림’은 ‘피흘림의 희생’을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피흘림의 희생을 통해서 생명을 위한 속죄의 언약을 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제사 제도와 예수님의 십자가는 똑같이 피를 흘려서 용서를 이루신 것이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다른 짐승의 피를 흘리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피를 흘리게 했지만, 예수님은 다른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히려 스스로 피를 흘리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주의는 자기의 의로움을 드러내고 다른 이들을 정죄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은혜는 자기 희생과 헌신을 통해 다른 이들을 살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행위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본훼퍼가 말했던 것처럼 ‘값싼 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는 값비싼 은혜, 값을 헤아릴 수 없는 은혜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값을 치르고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아무리 댓가를 치르려고 해도 치를 수 없기 때문에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해해서 ‘구원을 위해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거나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나 엄청난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더라도 ‘나에게는 아무 공로가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정결하게 하는 피를 사람에게만 뿌린 것이 아니라 21절을 보면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도 뿌렸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장막’에 피를 뿌린 것은 장막을 거룩하게 봉헌하였던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모든 그릇’은 성막과 성전에서 사용했던 기물들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사람 뿐만 아니라 물건도 피로써 정결하게 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피를 뿌렸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와같은 구약의 제사 제도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전해 주는데, 신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형식이나 외형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형식을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도 잘 준비해야 합니다. 구약의 제사에서 중요한 것은 제물과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지만 제물을 담는 그릇도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구약의 언약은 제물을 잡아 희생의 피를 드림으로 용서와 사죄가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언약의 핵심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언약은 짐승의 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궁극적인 용서와 사죄를 이루셨고, 우리를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새로운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시고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시는 예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2. 우리를 위해 언약의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온전히 섬기게 하소서.
3. 예수님처럼 우리도 희생과 헌신의 삶을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