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9:11~14,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 ; 하나님을 섬기도록

히브리서 9:11~14,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 ; 하나님을 섬기도록 (팟캐스트 방송 듣기)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말씀 묵상을 돕는 글

 

히브리서 911절은 Χριστς δὲ’라고 시작합니다. ‘δὲ’그러나, 그런데라는 뜻으로 10절까지 언급했던 첫 언약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이제부터 새로운 내용으로 바뀐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로운 언약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먼저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라고 말합니다. ‘장래(γενομένων) 좋은 일(ἀγαθν)’은 옛 언약이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속죄의 기능을 담당하였던 것에 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 속죄는 과거 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까지 포함하는 종말론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은 앞서 1절에서 세상에 속한 성소와 대비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불완전하고 임시적인 성소가 아니라 더 위대하고 온전한 장막’, 하늘에 있는 성소를 뜻합니다.

 

또한 12절을 보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들은 속죄일에 동물의 피를 통해 속죄 사역을 행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염소는 백성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었고 송아지는 대제사장 자신과 가족을 위한 희생 제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와같은 제사의 효력은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것이었기 때문에 매년 속죄일마다 희생 제사를 반복해서 드려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직접 자기의 피를 흘리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고,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기 때문에 과거처럼 반복적으로 희생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3절을 보면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이라고 말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는 속죄를 위하여 짐승을 죽여서 피를 드리는 것이고, ‘암송아지의 재를 뿌리는 것은 민수기 199절에서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희생 제물의 피와 재를 뿌리는 것은 외형적이고 상징적으로 깨끗함과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14절을 보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라고 말합니다. 표준새번역을 보면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우리를 죽은 행실에서 떠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령으로 말미암아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속죄 사역을 이루는 대제사장이 되셨음을 나타내고, ‘흠없는 자기를드렸다는 말은 민수기 614절에서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되 번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와 속죄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와 화목제물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로 드리도록 하였던 것처럼 희생 제물의 완전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구약에 나오는 동물의 제물그리스도의 결정적인 차이는 그리스도께서는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순종하여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동물을 제물로 드리는 것은 동물의 입장에서는 비자발적으로 생명을 빼앗기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스스로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동물의 제물을 드리는 것은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사랑을 성취하신 것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14절 하반절을 보면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라고 말합니다. 구약의 제사를 통해서는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속죄 사역이 가능한데 비해 예수님의 속죄 사역은 인간의 내면과 양심을 온전히 치유하여 하나님을 섬길(λατρεύειν) 수 있도록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섬긴다는 말은 예배드린다’(worship)는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을 치유하시고 구원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속죄하시는 이유는 치유와 속죄가 목적이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을 섬기도록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을 보면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첫 번째 질문으로 나옵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존재 이유와 삶의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여정에서 방황하고 길을 헤매는 이유는 이와같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단번에 거룩한 영원한 속죄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2.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육체의 정결 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정결을 얻게 하소서.

3.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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