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8:7~13, 새 언약을 맺으리라
히브리서 8:7~13, 새 언약을 맺으리라 (팟캐스트 방송 듣기)
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일반적으로 헬라어에서 두 사람 사이의 ‘언약, 약속’을 의미하는 단어는 ‘συνθήκη’(sunthḗk)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유언장’과 ‘언약’의 뜻을 모두 포함하는 ‘διαθήκη’(diathéké)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συνθήκη’가 동등한 관계에서 맺어지는 약속으로 ‘합의’와 ‘당사자’가 강조되기 때문에 상대방을 향해 어떤 요구나 제안을 할 수 있는데 반해, ‘συνθήκη’는 죽음을 예상하면서 작성하는 유언장처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대등하지 않고 일방적인 선언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주신 것은 당사자 간의 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 편에서 일어난 일방적이고 자발적인 행위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래서 ‘언약’이라는 의미 속에 ‘약속’이라는 뜻이 있더라도 거기에는 인간과 하나님이 대등한 입장에서 흥정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7절을 보면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라고 말합니다. 사실 첫 번째 언약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풀어 주신 은혜였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주신 이유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사랑하신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 언약으로 주어진 율법은 인간의 내면을 온전히 새롭게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연약한 인간에게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8절을 보면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 31장 31절부터 34절까지를 인용한 것인데 이미 수백년 전부터 옛 언약을 대신할 새로운 언약의 출현에 대해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점에서 ‘새로운’ 언약이라는 것일까요? 헬라어에는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할 때는 ‘neos’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καινήν’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더 좋은 것’을 나타냅니다. 특히 본문에는 ‘질적으로 좋은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마태복음 9장 1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새 포도주, 새 부대’라는 것은 시간적으로 새것을 의미하면서도 낡은 것에 비해 확실히 더 좋은 것을 나타냅니다.
어떤 점에서 새로운 언약이 더 좋은 것인지를 9절에서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탈출하게 하신 후에 ‘언약’을 주셨는데, 이 때 주신 언약이 모세의 율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언약을 준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맺어진 옛 언약은 효력을 잃게 되었고 더 이상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지 못하고 진노의 심판 앞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반면 10절을 보면 새로운 언약에 대해서는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로운 언약은 돌판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에 기록하셨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단지 형식적인 율법의 준수에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인격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유가 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11절을 보면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인격적이고 체험적인 지식’을 나타내는데, 과거 유대인들은 율법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알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천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고 배제 시켰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언약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더 이상 종교적인 기득권을 갖고 있는 특수한 사람들만의 특권이 아니라 마음과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향한 보편적인 은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언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12절을 보면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언약의 또다른 특징은 ‘죄 사함’인데,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는 이유가 제물이나 제사를 드리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 즉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는 인간적인 노력이 필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언약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과 자비하심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13절을 보면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옛 언약은 ‘낡아지고’ ‘없어져 가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낡아진다’는 말은 낡아져서 소멸되는 것을 뜻하고, ‘없어져 가는 것’은 ‘도시를 파멸시킨다, 비문을 말소한다, 법조문을 폐기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옛 언약은 새로운 언약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무효가 되었고 대치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로운 언약과 옛 언약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둘 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의 선물이지만 옛 언약은 새로운 언약의 모형과 그림자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길잡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언약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옛 언약이 아니라 새로운 언약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참 마음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것이 새로운 언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새로운 언약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2. 참되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형식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체험적인 신앙인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