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7:9~19, 더 좋은 소망
히브리서 7:9~19, 더 좋은 소망 (팟캐스트 방송 듣기)
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에게 멜기세덱은 아주 특별한 제사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브라함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9절을 보면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라고 말합니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십일조를 받는 위치에 있었지만 레위인들과 아브라함의 관계로 말미암아 레위인들도 아브라함과 함께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0절을 보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기 때문인데, 사실 레위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칠 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레위가 직접 십일조를 바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레위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쳤기 때문에 레위가 바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표현 방식은 성경에서 유대인들이 조상을 말할 때 그의 후손까지 포함하는 관습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레위 계통이 아닌 또다른 제사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을 통해서 온전한 죄사함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11절을 보면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여기서 ‘온전함’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뜻합니다. 그런데 ‘율법’은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할 뿐 율법의 준수를 통해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으로는 인간의 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론의 반차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을 보면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라고 말합니다. 제사장 직분과 율법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런데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이 불완전하여 사람들을 온전케 할 수 없다면 제사 직분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으로 바뀔 수 밖에 없고 아울러서 율법도 바뀔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크게는 레위 지파 출신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율법이 바뀌는 것인데, 13절을 보면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은 오직 레위 지파에서만 제사장직을 감당하도록 하였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새로운 제사장은 율법에 규정된 레위 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 곧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이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을 보면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유다 지파는 제사장 지파가 아닌 왕족 지파였기 때문에 제사장 직분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따르면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중보적 사역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온전케 하시는 중보자가 되어서 대제사장직의 직분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레위 지파에 속하지 않고 유다 지파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직을 감당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이 구약 시대처럼 혈통적인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서 바뀌게 된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사실은 히브리서 저자만의 주장이 아니었습니다. 15절을 보면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시편 110편 4절에서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라는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미 레위 계열이 아닌 멜기세덱의 계열에서 ‘별다른 한 제사장’이 등장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었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절을 보면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라고 말합니다.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레위 계통의 후손에서 제사장이 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법은 레위의 후손이라는 혈통과 외적 조건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는데,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은 소멸되지 않고 썩지 않는 ‘영원하신 왕’(딤전 1:17)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습니다. 결국 17절을 보면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율법의 시대가 폐하고 새로운 복음의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율법의 시대가 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연약하다’는 말은 율법 자체가 연약하다는 의미보다는 사람들의 연약함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무익하다’는 말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율법이 단지 사람의 외형적인 모습만을 정결케 할 뿐 내면의 속사람까지 깨끗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와같은 율법의 한계로 말미암아 율법은 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라 19절을 보면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고 말합니다. ‘더 좋은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율법만으로는 도저히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소망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2. 새로운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3. 더 좋은 소망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