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7:23~25,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예수님
히브리서 7:23~25,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예수님 (팟캐스 방송 듣기)
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맹세로 되었다고 말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맹세하셨다는 것은 이 사건이 그만큼 특별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라고 말하였는데 왜냐하면 과거의 제사 제도가 불완전하고 무익하여 폐하여졌고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는 새로운 은혜의 언약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더 좋은 언약’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에는 새로운 제사 제도와 제사장으로서 예수님께서 뛰어나신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먼저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과거의 제사 제도가 일시적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이 다른 인간과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죽고 다른 사람이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요세푸스에 의하면 아론으로부터 시작해서 AD 70년 예루살렘 멸망에 이르기까지 모두 83명의 대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의 수효가 많다는 것은 그들이 모두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들이 행하는 제사 행위가 불완전함을 나타냅니다.
이에 비해 예수님은 24절,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매우 중요한 두가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먼저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않는다’(ἀπαράβατον)고 말하는데, 이것은 법률 용어로 ‘범할 수 없는 것, 바꿀 수 없는 것, 대신할 수 없는 것’(inviolable, unchangeable, unalterable)을 뜻합니다. 그래서 재판관이 자신의 판결을 ‘아파라바토스’라고 말하면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것’, 혹은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는 것’(nontransferable)을 의미합니다. 저술가인 ‘갈렌’은 이 단어가 결코 범할 수 없는 과학적인 법칙 혹은 우주를 성립하는 기본 원리를 나타낸다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인간 제사장이 맡은 직분은 다른 제사장에 의해 대신될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담당하신 제사장 직분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치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구약의 제사장들은 ‘항상 있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영원히 계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항상 있다(παραμένειν), 영원히 계신다(μένειν)’는 단어는 크게 두가지 의미로 구분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어떤 지위에 머문다’는 의미로 보면 예수님께서 중보자로서 갖는 지위에는 다른 어떤 사람도 임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또한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직분을 지속하고 계신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유서를 남기면서 딸에게 ‘어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παραμένειν) 머물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어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 어머니 곁에 머물러 돕고 부양하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 ‘항상 있다, 영원히 계신다’고 말하는 것은 ‘변함없이 영원한 직분을 갖고 계시다’, ‘영원토록 인간을 위해 봉사를 계속하신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 인간의 몸으로 머물러 계셨을 때 뿐만 아니라 부활 승천하신 후에도 영원토록 인간을 구원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 제사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제사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5절을 보면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온전히’(παντελὲς)라는 말은 ‘완전히, 절대적으로’라는 뜻인데, 다른 제사장들의 제사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여질 수 밖에 없었던 것과는 달리 예수님의 제사(십자가 사건)는 구원을 완성하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하실’(σῴζειν)이라는 동사의 시제는 한글번역에서는 미래형처럼 보이지만 헬라어 본문에서는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궁극적인 의미에서 ‘구원’은 종말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 완성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 그리고 승천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현재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현재적인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면서 동시에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미래적인 구원의 완성을 위해 예수님께서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간구하다’(ἐντυγχάνειν)는 말은 ‘중재하다, make a petition’이라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살아계실 때 뿐만 아니라 승천하신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 우편에서 중재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독론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서 유일하고 완전하신 예수님, 부족함이 없고 영원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2.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깨닫게 하소서.
3.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