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7:20~22,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신 예수님
히브리서 7:20~22,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신 예수님 (팟캐스 방송 듣기)
20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율법을 주셨지만 율법은 무익하므로 폐하여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소망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신에 속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않고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새로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에 대해 말하면서 예수님께서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다고 말합니다.
먼저 20절을 보면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21절에는 ‘그들은 맹세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다른 제사장들과는 달리 맹세로 제사장이 되셨다고 말하는데 시편 110편 4절을 보면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맹세하셨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고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굳이 자신의 말에 대하여 ‘맹세’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맹세가 필요한 존재는 인간이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맹세’하셨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만큼 중요하고 결정적인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서 일반적인 제사장의 경우와는 달리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새로운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보증한다는 의미에서 ‘맹세’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22절을 보면 ‘이와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언약’(διαθήκης)은 일반적으로 ‘testament, will, covenant’라는 뜻으로 ‘두 당사자 사이에서 맺어지는 계약’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출애굽기 24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3절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준행’이었습니다. 만약 준행하지 못할 때는 제사장을 통해 제물을 드림으로써 다시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속죄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구약’과는 다른 ‘더 좋은 언약’을 예수님을 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예수님께서 ‘더 좋은 언약’을 주셨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조금 전에 언급하였던 것처럼 ‘구약’은 율법과 율법에 대한 순종(준행)과 죄를 속죄하기 위해 제사를 드리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는 죄를 지을 때마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드려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구약의 제사는 연약하고 무익한 제사(불완전)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더 좋은 새로운 언약’은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의 제물로 기꺼이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구약의 제사는 인간의 제사이지만 신약의 제사는 예수님께서 직접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자격이 없는 인간이 은혜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 좋은 언약’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새로운 언약을 예수님께서 ‘보증’하셨다고 말하는데, ‘보증’(ἔγγυος)은 보증을 주는 자가 보증이 되는 사람, 보증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은행 예금자의 보증인이 된 사람은 예금자가 예금한 것 이상의 금액을 인출하는 경우에는 그 차액을 갚아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죄수의 보증인이 되었을 때는 죄수를 법정으로 출두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결국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십자가의 사랑과 구원을 이루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를 보증하신다, 예수님의 인격과 생명을 담보로 자신이 행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지고 보증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더 좋은 언약, 새로운 언약’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단순히 ‘옛 언약’의 시대가 지나갔기 때문에 저절로 ‘새 언약’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새로운 언약’의 시대를 살면서도 여전히 ‘옛 언약, 낡은 언약’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율법과 행위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죄와 악의 현실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입니다.
이사야서 6장을 보면 천사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장면을 목격한 후에 이사야가 가장 먼저 했던 고백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게 되니까 자신이 얼마나 부정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체험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은 자신의 죄와 악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좋은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확실한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2. 새로운 언약, 더 좋은 언약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게 하소서.
3.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