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6:9~12, 하나님은 잊지 아니하시느니라
히브리서 6:9~12, 하나님은 잊지 아니하시느니라 <팟캐스트 방송 듣기>
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앞서 히브리서 기자는 ‘타락한 자들,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자들에 대하여 경고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준엄하게 말하는 이유는 교리적으로 구원의 불확실성이나 불완전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시 성도들이 박해로 인해 신앙을 버리고 배교하려는 유혹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다시금 신앙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목회적인 의도에서 했던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는 밭처럼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9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전체에서 ‘사랑하는 자들’(ἀγαπητοί)이라는 호칭이 여기서만 유일하게 등장하는데, 지금까지 엄격하고 준엄한 어조를 누그러뜨리고 친근하고 다정한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히브리서를 기록하는 근본적인 동기가 ‘사랑’에 있음을 나타냅니다.
먼저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고 말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앞서 4~8절에서 언급했던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자들’은 ‘버림을 당하고 저주를 받고 불사름’을 받게 되었지만 지금 히브리서를 읽는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보다 더 좋은 것, 즉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원에 속한 것’이라는 말은 ‘ἐχόμενα(possess) σωτηρίας(salvation)’로 ‘구원을 소유’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타락한 자들과 달리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0절을 보면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소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자답게 선행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행위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미’와 ‘이제도’라는 표현은 이들의 사랑의 행동이 일시적인 행동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일관된 행동이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11절을 보면 ‘끝까지’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미래적인 표현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한결같은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잊어버리 아니하’신다고 말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불의하지 않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이처럼 일관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매너리즘이나 권태기에 빠져서 신앙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하고, 또 교회에서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부담을 느끼거나 즐거움이 사라졌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흔히 이와같은 일을 내려 놓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내려 놓는다’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려 놓음’이라는 말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기득권과 힘을 내려 놓거나 물질에 대한 집착과 인간적인 소망을 내려놓는 것이지 봉사와 헌신의 십자가를 포기하고 중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과 섬김의 삶은 내려놓음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이제도, 끝까지’ 감당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11절을 보면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간절히 원한다’는 말은 ‘열렬하게 바란다, 소망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너희 각 사람’은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인데, 성경에는 이와같은 구체성과 개별성을 강조하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폴 토니어(Paul Tournier)가 쓴 [한 의사의 기록]에는 ‘성경의 개인적인 관심’에 대해 말하는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안다’고 하셨고. 고레스 왕에게 ‘내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라고 하셨다. 이것은 성경에서 개인에 관심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성구들이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누구라도 개인의 이름이 점유하고 있는 위치가 큰 것에 놀랄 것이다... 성경적인 입장에서 인간은 단순한 물체나 추상적인 존재 또는 동물학적인 분류나 사상도 아니며 대중의 한 작은 부분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쨌든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들이 과거,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도(끝까지) 한결같은 사랑의 삶을 살면서 ‘소망의 풍성함’(소망의 실현, 온전한 소망)에 이르기를 기대한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11절을 보면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게으르지 않다’는 말은 ‘둔하지 않다’는 뜻인데, 특히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을 받는 자들’은 13절 이하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약속을 기업으로 본받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도 ‘오래 참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소유한 사람임을 확신하게 하소서.
2. 지치지 않는 믿음, 오래 참는 성실함으로 사랑의 섬김을 지속하게 하소서.
3.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하게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