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6:4~8, 하나님께서 축복하는 땅

히브리서 6:4~8, 하나님께서 축복하는 땅 (팟캐스트 방송 듣기)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히브리서 61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완전한 데성숙한 경지를 의미하고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에 인격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완전한 데로 나아가기는커녕 타락한 자들이 많았는데, 더군다나 4절을 보면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심각한 고민거리를 던져줍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오는 말들이 하나님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 번 빛을 받고라는 말은 2세기 경에는 흔히 세례를 베풀다는 뜻과 동의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이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꼭 세례를 받았다는 의미로 단정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이라는 의미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나타내기 때문에 한번 빛을 받았다는 말은 이미 예수를 믿었던 사람을 나타낸다고 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음의 진리를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 중에 타락한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되었다고 말하는데, ‘하늘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성령에 참여하였다는 말은 성령과 교제하다는 뜻으로 성령 체험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5절을 보면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고 말하는데, ‘말씀을 맛보았다는 말은 진리의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것이고, ‘내세의 능력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장차 이루어질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면서 현실의 고난이나 어려움을 이겨내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것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절을 보면 타락한 자들이 있었고, 이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모습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놓고 욕되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빛이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영생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욕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일까요? 많은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해석하기 불가능하다, 곤란하다고 말하는데, 다만 Bengel이 말했던 것처럼 인간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는 가능하기 때문에 은총에서 떨어져 나간 자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이 가지신 사랑과 권세에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여기서 타락했다는 말은 ‘fallen away, turn away from God, 한쪽으로 떨어져 나간다, 배반하다, 등을 돌리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사람들은 영적인 체험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았지만 하나님을 등지고 다른 쪽으로 떠나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이해하려면 먼저 히브리서가 박해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는데, 당시에는 극심을 고난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배교를 택하거나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고발하여 죽게 만드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을 염두에 두면서 신앙의 절개를 지키도록 하려고 했던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서 이것은 신학적 혹은 교리적으로 구원의 불확실성이나 불완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세례를 받고 믿음을 고백하더라도 행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공로주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목숨을 위해서 신앙을 부정하고 배교하는 일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것과 같다는 사실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다시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특히 다시금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quovadis’라는 이야기의 중심 주제인데, 베드로가 네로 황제의 박해로 인해 로마에서 체포되었다가 도망친 후에 실망과 좌절에 휩싸여 압비아(Appian) 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자신의 앞에 계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Domine, quovadis?”라고 질문하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야, 이번에는 너를 대신해서 로마로 돌아가서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고자 한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 말씀을 듣고 발길을 돌려 로마로 돌아가서 순교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박해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신앙을 잃어버리거나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과거의 그리스도인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궁극적 종말에 대해서는 Bengel의 말처럼 하나님의 주권에 맡길 수 밖에 없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나가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고 말하는데,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 땅이 비를 받아서 채소가 잘 자라는 것을 하나님의 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양식과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열매 맺는 삶을 사는 것이 복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8절을 보면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앞서 6절에서 타락한 자들을 여기서는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땅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이렇게 가시와 엉겅퀴가 나오는 땅은 쓸모가 없어서 버려지고 결국은 불에 타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비를 머금고 식물과 채소가 잘 자라는 기름진 땅이 있는가 하면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쓸모 없는 땅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머금고 순종하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야말로 참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2. 비를 흡수하여 합당한 채소를 내는 복된 땅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3.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벗어나서 곁길로 가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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