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6:17~20, 소망 ; 영혼의 닻 (팟캐스트 방송 듣기)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 본문 19절을 보면 ‘영혼의 닻(ἄγκυραν)’(an anchor for the soul)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닻’은 배가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도록 물 밑바닥으로 내리는 갈고리가 달린 고정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그런데 ‘닻을 내린다’는 말은 흔히 인생을 항해에 비유할 때 흔들리지 않도록 안전한 토대를 마련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표현하는 문학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닻’의 비유가 여기에서 나오는데, 우리의 삶이 거센 비바람과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먼저 17절을 보면,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맹세로 보증’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의 불변성을 의미합니다. 특히 ‘보증한다’(ἐμεσίτευσεν)는 말은 ‘중재하다, mediate’라는 단어에서 비롯되었는데, 중재자가 중간에서 양자를 연결시켜 줄 때 사용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13절에서 말했던 것처럼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중재자가 없이 직접 맹세로 보증을 하셨는데, 구체적인 내용이 창세기 22장 16, 17절,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맹세를 해야 하는 하등의 이유나 필요가 없으신 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맹세와 약속을 하신 이유는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라함이라고 말하지 않고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와같은 맹세가 아브라함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 즉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까지 확장되어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는 자신의 약속이 변치 않는다는 사실을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보증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혼의 닻’은 이와같은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라고 할 수 있는데, 18절을 보면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은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인데, 하나님께서 약속과 맹세를 하셨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약속과 맹세를 하시는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NIV 성경에는 ‘by two unchangeable things in which it is impossible for God to lie’라고 말하는데, 하나님께도 불가능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표현이 민수기 23장 19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고 말하고, 사무엘상 15장 29절에도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불가능성입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가 확실하지 않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에 닻을 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불확실한 약속과 맹세를 좇아가는 사람들은 위로는커녕 인생을 허비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다시 말해서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들은 ‘큰 안위’를 받을 수 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가 성취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절을 보면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영혼의 닻’에서 ‘영혼’은 인간을 ‘육과 혼’으로 구분하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모든 생명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인간이 도달하게 될 궁극적 종착점, 안전한 정착지는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휘장’은 성서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천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지성소는 레위기 16장 2절을 보면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차례 대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와같은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영혼의 닻’을 내릴 수 있도록 약속해 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맹세의 핵심은 아브라함에게는 땅과 후손에 대한 약속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절을 보면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앞서 가셨다’는 말은 ‘첨병’이나 ‘전령’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선구자, 선두 주자’를 나타내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그리스도인들의 선구자로 멜기세덱과 같은 대제사장직 수행을 위해 먼저 휘장 안으로 들어가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구원의 소망을 갖게 되었기에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영혼의 닻’을 내리는 사람은 소망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하나님의 약속을 좇아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구원의 소망임을 깨닫게 하소서.
3. 영혼의 닻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