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5:5~10,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신 예수님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앞서 히브리서 5장 1~4절에는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해서 대제사장이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비록 연약한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으로 ‘존귀’하게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데, 먼저 5절을 보면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앞서 히브리서 3장에서 모세와 예수님의 유사성을 비교하면서 모세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였지만 예수님께서 모세보다 우월하신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도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으로 대제사장이 되었던 것처럼 예수님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신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제사장과 예수님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인데, 히브리서 저자는 시편 2편 7절을 인용하여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시편 110편 4절을 인용한 것인데,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다’는 말은 멜기세덱 계열 혹은 후손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멜기세덱과 같은 형태의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멜기세덱에게는 후손이나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인데, 어쨌든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세덱과 그리스도의 유사성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고 말하는데, 왜냐하면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은 오직 제사의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처럼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멜기세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히브리서 7장에서 자세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7절을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는 말은 다른 인간과 똑같은 연약성을 지니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특히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하게 기도하셨던 장면을 나타내는데, 여기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는 말은 ‘(희생 제물을) 바친다’는 제의적 용어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물을 바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간구와 소원’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사는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경건하심’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음에 대한 인간적인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를 드렸던 것처럼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는데, 이와같은 예수님의 기도는 자신의 뜻을 이루는 기도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예수님의 모습을 8절에는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다고 말합니다. ‘배운다’는 단어가 ‘ἔμαθεν’(emathen)이고, ‘고난을 받는다’는 ‘ἔπαθεν’(epathen)입니다. 둘 다 발음이 비슷한데 헬라 문학에서는 수사학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이렇게 비슷한 발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쨌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운다’는 말은 고난을 통해 비로소 순종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과정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었고, 고난 속에서도 순종하임을 통해 참된 순종의 길을 보여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이와같은 고난의 순종을 통해 예수님은 9절,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고난 받기 전에는 불완전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난을 받으심으로 비로소 사람들의 죄를 사하는 대제사장으로 온전케 되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던 것처럼 예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하에 있던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과는 다른 은혜에 의한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고난 앞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소서.
2.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셨던 주님의 기도를 배우게 하소서.
3. 고난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