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5:11~14, 장성한 자가 되어야
히브리서 5:11~14, 장성한 자가 되어야 (팟캐스트 방송 듣기)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고 또한 예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다고 말했는데, 그런데 11절을 보면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고 말합니다. 사실 헬라어 본문에는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이 직접 언급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Περὶ(Peri, Concerning, about) οὗ(hou)’라는 단어에서 ‘οὗ’(관계대명사 ‘this’)가 바로 앞에서 말했던 멜기세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에 대하여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유대인들의 관점과는 다른 입장에서 멜기세덱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멜기세덱과 연결시키는 것은 이해하기가 쉬운 주제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멜기세덱’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또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말하는 것도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난해한 이야기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둔하다’(νωθροὶ)는 말은 ‘듣는 것에 무관심하다,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사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현대인들처럼 과학적인 사고를 하거나 신학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유대인 그리스도인 경우에는 구약에 대한 부분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지식적인 부분에서 둔하고 무감각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사는 사람도 적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앞서 9절에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고 말했는데, 왜냐하면 많은 성도들이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같은 성도들의 모습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는데, 12절을 보면,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라고 말합니다. ‘때가 오래 되었다’는 말은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연수가 오래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선생’이 되어 가르칠 만큼 신앙의 연조가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매번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의 초보’라고 말하는데, ‘말씀’(λογίων)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씀(로고스)의 지소어(가장 작은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이고 초보적인 말씀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초보’(στοιχεῖα, principles)라는 단어는 문법적으로는 A, B, C와 같은 알파벳 문자를 나타내고, 기하학에서는 점이나 선에 대한 기본 증명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초보’라는 말 자체는 꼭 알아야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지식이나 원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와같은 하나님의 말씀의 기본 원리(초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도들이 말씀의 원리를 배운 후에 계속해서 성장해야 하는데 언제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다고 말하는데, 물론 갓난 아기 때에는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없고 대신 젖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3장 2절을 보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젖을 먹이는 것처럼 양육하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말씀을 통해 양육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3절을 보면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직 연약한 성도들을 ‘어린 아이’(유아)라고 말하는데 어린 아이는 순수한 사람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말씀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미숙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뿐만 아니라 ‘의의 말씀’을 체험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할 합당한 삶의 모습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14절을 보면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어린 아이’와는 달리 ‘장성한 자’는 크게 세가지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첫째는 장성한 사람은 ‘지각을 사용’하는 사람인데, ‘지각’(αἰσθητήρια)은 ‘감각 기관 senses’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은 세상을 감각 기관을 통해 관찰하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데, 그래서 지각을 사용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지적인 능력을 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장성한 사람은 ‘연단’(γεγυμνασμένα)의 시간을 피하지 않는 사람인데, ‘연단’이라는 말은 ‘훈련하다’는 뜻입니다. 앞서 장성한 사람이 지각을 사용한다고 말했는데, 한번 지각을 사용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훈련하고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장성한 사람은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인데, 여기서 ‘선악을 분별’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 선악과를 먹으려고 했던 것과는 이유와 목적이 다릅니다. 장성한 사람이 선악을 분별하려고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악을 분별하여 죄의 길로 빠지지 않기 위해 지각을 사용하고 연단을 받으면서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지로 인한 죄, 오해로 인해 발생하는 죄를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영적인 성장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말씀의 초보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성과 영성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알아가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하나님의 말씀에 둔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2. 말씀을 배우는 사람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소서.
3. 지각을 사용하고 훈련과 연단을 통해 참된 진리를 분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