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4:4~11,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히브리서 4:4~11,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앞서 히브리서 저자는 41절에서 선민 의식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말씀을 안이하게 생각하면서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안식에 대한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없어서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안식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4절을 보면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몇 장 몇 절이라고 밝히지 않고 어딘가에라고 말하는 이유는 과거에는 현재와 같은 , 절 구분이 없었기 때문인데, 장과 절을 구분하기 시작한 역사를 잠깐 생각해 보면 신약 성경의 경우에는 1551년 스테파누스라는 사람이 성경을 인쇄하면서 장과 절을 처음으로 구분하여 사용한 것이 시초였고,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 본문에 열린 문단(행을 바꿔쓰기), 닫힌 문단(띄어쓰기) 혹은 세다림(section, 452개의 세다림)’등으로 구분하고 있었는데, 16세기부터 스티븐 랭톤이라는 사람이 숫자로 장을 구분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을 라틴어 불가타에서 받아들이면서 정착되었습니다.

 

어쨌든 히브리서 기자는 창세기 22절에서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고 말하면서 안식의 기원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앞서 3절에서 인용했던 시편 9511절을 다시 한번 인용한 것인데,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안식을 시작하셨는데 다른 한편으로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을 보면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라고 말합니다.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식에 들어가는 일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라고 말합니다. ‘오랜 후라는 것은 광야 시대 이후에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의미이고, ‘다윗의 글은 앞서 인용했던 시편 95편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또다시 말씀하셨는데, 그 내용은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은 안식에 대한 약속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폐지되지 않고 현재까지 유효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서 안식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과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자들에게 성취되는 종말론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했던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8절을 보면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가 안식을 주었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된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안식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난 것이라면 또 다른 안식을 말할 필요가 없었을텐데, 시편 95편에서 안식에 대한 말씀을 하는 이유는 영원한 안식’,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진정한 안식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9절을 보면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는 영원한 안식이 성도들에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0절을 보면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고 말하는데, ‘이미 안식에 들어간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앞서 죽은 사람들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서 이미하나님의 안식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안식은 하나님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미’(already)아직’(not yet)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안식은 안식일의 주인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이미이 땅에서 시작되었지만 아직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안식을 누리지만 아직 완전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완전한 안식은 하늘 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땅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11절에 나오는 것처럼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힘쓴다는 말은 재촉하다, 열심히 노력하다는 뜻인데, 단순히 인간적인 노력을 기울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힘쓴다는 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특히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누릴 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완성된 안식을 기다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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