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2:11~13,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말씀 묵상을 돕는 글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잠시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지만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7),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되신 구원의 창시자’(10)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인간과 완전히 존재의 근원이 다른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의 창시자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먼저 예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와같은 질문에 대해 11절을 보면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라고 말합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는 모세 오경에서는 주로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구원의 창시자이신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성도들이 모두 다 한 근원에서났다고 말합니다.

 

조금 전에도 언급한 것처럼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과 예수님 사이에는 명백한 불연속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인간과 예수님 사이에는 명백한 연속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인간 사이에는 불연속성과 연속성이 있는데, 예수님과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라는 점에서 볼 때 한 근원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οκ παισχύνεται)는 말은 다른 말로 주저하지 않는다, 개의치 않는다, 거리낌이 없다’(공동번역)는 뜻입니다. 인간 존재는 예수님과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성도들을 같은 형제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맏아들’(1:6)과 같은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영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와같은 점을 확증하기 위해 다시금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하는데, 12절을 보면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시편 2222절을 인용한 것인데, 여기서 내가라는 1인칭 대명사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의 이름, 즉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성도들에게 전하셨는데, 이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형제라고 직접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2222절에는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는 회중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여기서는 교회’(ἐκκλησία)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ἐκκλησία라는 단어는 특별한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였는데, 신약 성경에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앞서 사용된 형제들과 동일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3절을 보면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는 구절은 이사야 817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고,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는 이사야 818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을 인용한 것입니다.

 

먼저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πεποιθς)’는 말은 이사야서에는 기다리며 바라본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인데,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다릴 수 없지만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희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의존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희망이며 우리의 희망을 성취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예수님께서는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 속에서도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사야서 818절을 인용하여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사실 이 구절의 직접적인 의미는 이사야 당시에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고 남아있던 자들인 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과 마헬살렐 하스바스와 그의 제자들에 관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이사야를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보았고, 또 이사야의 두 아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을 자들의 모형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성도들의 관계를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같은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는 구절을 생각해 봅니다. 사실 우리는 이와같은 말씀 앞에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럴만한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기꺼이 형제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찬송하는 사람들, 주님을 의지하는 자녀들로 살아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주님의 형제로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주님을 소망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4.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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