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3:9~11, 무익하고 헛된 것
9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11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바울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칭의’를 받게 하시고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가르침이야말로 참된 복음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적극적인 권면을 마치고 9절부터는 ‘금지의 권면’을 시작하는데,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도 디모데전서 1장 4절에서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고 비슷한 언급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디도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디도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당시 초대 교회가 일반적으로 마주하고 있던 문제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어리석은(Μωρὰς) 변론(ζητήσεις)’을 피하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먼저 ‘변론’이라는 것은 ‘질문, 논쟁, 연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것은 질문이나 논쟁 자체를 금지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미련 질문이나 논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어떤 논쟁들은 기독교의 신학을 정립하는데 꼭 필요한 논쟁도 있었지만 때로는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것이나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것, 혹은 구원과 신자의 삶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관한 논쟁들을 말합니다.
특히 16세기 중반 이후에 종교 개혁의 과정에서 [아디아포라(대수롭지 않은 것들) 논쟁]이 있었는데,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는 것을 디아포라(diaphora)라고 하고 반대로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지 않아서 임의로 할 수 있도록 남겨진 영역을 아디아포라(adiaphora)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몇 시에 예배드릴 것인지, 예배 시에 어떤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할 것인지, 예배순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아디아포라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정반대의 입장으로 갈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도 입장이 갈라졌는데, 루터는 성경이 명백하게 금하지 않는 한 로마 교회의 전통과 관습을 버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칼빈은 반대로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한 로마 교회의 모든 전통이나 관습들은 거부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런 것들을 무조건 ‘아디아포라’라고 보면 지나친 방종과 무절제에 빠질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이런 것에 너무 얽매이면 율법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필요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지나친 방종이 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23, 24절에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어쨌든 바울은 불필요하고 비본질적 논쟁을 피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족보 이야기’를 피하라고 말하는데, 족보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어리석은 변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족보를 중시하지만 유대인들도 족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제사장들의 가상적 족보를 만들어 이것을 구원의 조건과 선민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방편으로 내세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와같은 유대인들의 자랑과 변론은 초대 교회에 많은 혼란과 분열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와같은 ‘족보 타령’을 피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고 말합니다. 율법에 대한 다툼은 유대인들이 주장했던 할례와 정결례와 같은 것들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논쟁이 논쟁으로 그치지 않고 분쟁을 초래하였습니다. 결국 이와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를 놓고 서로 다투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단순한 다툼으로 그치지 않고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복음의 진리를 떠나서 자신의 의를 주장하고 드러내는 모습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피한다’(περιΐστασο)는 말은 ‘to stand around, turn around’(따로서다, 돌아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이와같은 일들은 전혀 무익하고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10절을 보면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말하는데, 9절에서 언급한 사람들도 피해야 하지만 ‘이단’도 멀리해야 하는데, 원래 ‘이단’은 ‘견해, 학파, 종파’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이단자들은 복음의 진리를 거절하고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에 관한 논쟁과 족보 이야기 등 허탄한 주장으로 교회의 가르침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말합니다. ‘한두 번 훈계’하라는 것은 이들에게도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멀리하라’는 것은 이들과의 관계를 끊으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11절을 보면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고 말합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진리를 거부하고 교회의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패하여 죄를 짓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어리석은 변론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2. 무익하고 헛된 것들을 물리치게 하소서.
3. 잘못된 가르침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