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서 1:8~10, 갇힌 중에 낳은 아들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8절부터는 본격적으로 바울의 부탁이 시작되는데, 먼저 8절을 보면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라고 말합니다. ‘담대하게라는 말은 개방성과 솔직성, 혹은 정직함을 나타내는 단어로 공동번역에는 거리낌 없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마땅한 일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의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뜻합니다. 또한 명할 수도 있으나라는 것은 바울이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성도들에게 말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부터 말하려는 것은 바울이 부탁을 하지 않고 명령을 해도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9절을 보면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라고 말합니다. ‘사랑으로써 간구한다는 말은 바울이 빌레몬을 사랑한다는 의미도 되지만 앞서 5절에서 빌레몬이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빌레몬이 지니고 있는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냅니다. 결국 빌레몬이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간구, 간청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스스로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빌레몬보다 나이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연장자로서 빌레몬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고, ‘지금 또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바울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간청하는 것을 들어달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명령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탁, 간청을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왜냐하면 바울이 빌레몬에게 말하려는 것은 강제적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여야만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바울이 간곡하게 간청하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10절을 보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고 말합니다. ‘갇힌 중이라는 말은 바울이 옥중에 갇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갇힌 중에 낳았다는 말은 랍비적인 표현입니다. 그래서 아들은 혈육의 관계가 아니라, 랍비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낳았다는 말에는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바울은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했고 마침내 오네시모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여 새로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글 성경에는 오네시모의 이름이 중간에 나오지만 헬라어 본문에는 맨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는데, 왜냐하면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으로 있다가 도망친 사람이었기 때문에 빌레몬으로 하여금 먼저 오네시모가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오네시모 이름을 마지막으로 언급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여기까지 편지를 읽던 빌레몬은 마지막에 오네시모라는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네시모는 얼마 전까지 빌레몬의 집에서 종으로 있다가 도망쳤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18절을 보면 그가 만일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는 말로 미루어 볼 때 도둑질을 하거나 어떤 손해를 입힌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손해를 입혔기 때문에 도망친 것인지, 아니면 도망쳤기 때문에 손해를 입힌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오네시모는 불의하여 손해를 입히고 도망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모와 사도 바울은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일까요? 사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은 유익한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집에 있을 때만 해도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무익하고 손해를 끼치는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주인은 종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오네시모는 주인에게 잘못을 저지른 후에 도망치게 되었고, 주인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당시 범죄인들의 은신처였던 로마까지 도망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바울을 만나게 되었고,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회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의 이야기는 다른 한편으로 보면 모든 인간의 실존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행하게도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오네시모처럼 도망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을 피하여 도망쳤듯이 아담의 후예들도 불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 실존은 이렇게 어그러진 관계, 불편한 관계, 도망치는 관계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오네시모의 회심을 나타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자라나야 할 존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막 태어나 걸음마를 뗀 갓난아기와 같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어려운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연약한 성도를 돕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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