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서 1:15~18,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라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바울은 오네시모를 돌려보내면서 그가 이제는 무익한 사람이 아니라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고, 심지어 바울의 ‘심복’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에 관한 일을 명령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자의’로 선한 일을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15절에서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라고 말합니다. 맨 앞에 ‘왜냐하면’이 생략되어 있는데, 바울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의 문제를 자의로 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라는 단어는 오네시모의 도망 사건 배후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또한 바울이 오네시모가 도망쳤다는 말 대신 ‘떠나게 된 것’이라는 부정과거수동태를 사용해서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미 행해진 일의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나타내는 ‘신적인 수동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바울은 오네시모가 도망친 사건으로 생각하지 말고 ‘떠나게 된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오네시모의 사건이 잘못된 일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라는 말은 ‘잠시 떠나게 된 것’과 대조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오네시모가 빌레몬을 떠나게 된 것은 ‘잠시’의 사건이었지만 빌레몬과 오네시모가 그리스도 안에서 맺은 새로운 관계는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시간에서 오네시모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도록 권면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여러 가지 사건과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일만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려고 하시는 의미와 교훈을 놓치기 쉽습니다. 또한 순간적이고 찰라적인 면만 바라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겉으로 드러난 일의 현상 뿐만 아니라 사건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통찰력 있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능력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이런 점에서 좋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바울도 감옥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에게 이 시간은 ‘영원’한 천국의 시간에 비하면 ‘잠시’에 불과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의 사건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빌레몬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16절을 보면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오네시모와 새로운 관계를 영원히 맺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종’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에게 오네시모는 이미 ‘종 이상으로 사랑받는 형제’라고 말합니다. 이미 바울에게는 오네시모가 종이 아니라 ‘사랑받는 형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빌레몬도 오네시모를 사랑받는 형제로 대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을 보면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영접하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빌레몬과 바울의 관계가 ‘동역자’라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있습니다. ‘동역자’는 ‘κοινωνόν’이라는 단어인데 성도의 교제를 나타내는 ‘κοινωνία’라는 단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사업상의 파트너나 친구 사이에서 우정을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를 함께 나누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바울과 빌레몬의 관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라면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도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오네시모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 12절에서 ‘그는 내 심복’이라고 말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에게는 분신과도 같은 사람이고 마치 바울이 직접 가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는데, 여기서도 빌레몬에게 바울을 영접하는 것처럼 곧 오네시모를 영접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8절을 보면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영접하라고 말하면서 오네시모가 도망치면서 빌레몬에게 끼쳤을지도 모를 재산상의 손해에 대하여 자신이 직접 책임지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앞서 오네시모를 자신의 ‘심복’이라고 말하고, ‘나를 영접하듯 오네시모를 영접’하라는 말이 결코 과장된 말이거나 진실성이 없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그의 죄와 허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입힌 손실마저도 함께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신앙공동체의 모습과 비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신앙공동체 안에서 성도들이 사랑과 우정을 함께 나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못과 허물마저도 함께 책임지고 감당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사랑은 책임과 희생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사건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알게 하소서.
2.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동역자가 되게 하소서.
3. 책임을 함께 지는 동역자가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