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2, 아들을 통하여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부터 히브리서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히브리서는 아주 ‘미스테리한 편지’입니다. 그래서 Scott이라는 신학자는 히브리서를 “상세하게 연구하면 할수록 더 많은 문제가 생겨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다른 서신들과는 많이 다르고 오히려 논문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그런데 히브리서의 마지막에는 작별 인사와 축복 등 다른 편지와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글의 형식부터 종잡기 어려운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초기에는 이 글이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서신들처럼 누구에게 보내는 글이라는 말도 없고 인사와 문안도 없이 곧장 신학적 토론으로 직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자체가 편지라는 단어나 쓴다는 용어도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히브리서를 편지가 아니라 편지의 형태를 본뜬 “신학적 논문”혹은 “설교”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의 내용이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과 직접 관련된 것으로 보이지 않고, 내용 구성으로 볼 때 이미 믿는 자들을 위한 권면, 지도, 위로의 목적으로 기록된 교훈적이면서 교육적인 설교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를 쓴 사람은 누구일까요? 일반적으로는 바울의 서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학자들 중에는 어휘나 문체가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는 확연하게 다르고 내용의 구조 면에서도 바울 서신의 구조와 일치하는 점이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바울이 기록했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또한 이 글이 누구를 대상으로 쓴 글인지도 정확히 알기가 어렵습니다. 겉으로 보면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에는 유대적 사상, 특히 구약 제사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구약의 말씀을 많이 인용하고 있고, 또 유대인들을 겨냥하여 신약이 구약보다 우월하며, 예수가 모세보다 우월하며 예수의 대제사장직이 레위족의 제사장직보다 우월하다고 논증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방인 기독교인들 혹은 헬라 사상에 익숙한 기독교인들을 위해서 쓴 글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에서 언급하는 구약의 내용은 당시 기독교인들이 보편적으로 알고 있던 수준이고 만일 저자가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일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세례에 관한 교리와 안수에 대한 것과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것과 영원한 심판”(6:1~2)에 대한 것을 언급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과 하나님이 성령 가운데 내재하심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언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도 정확히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히브리서를 왜 쓰게 된 것일까요? 히브리서를 기록한 저자는 구약에 정통한 사람으로 구약성경의 제사제도, 제사장 제도 등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헬라 철학도 상당한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이 박해의 때가 점점 가까이 오고 있고 구약의 내용을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 잡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제사장, 제물, 천사, 모세를 예수 그리스도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제사장, 제물, 천사, 모세, 제사장과 그리스도를 대비시켜서 참 중보자, 참 종교에 대해 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절을 보면,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옛적에’는 ‘지나간 시대’ 즉 구약 시대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을 통하여’라는 것은 NIV에서는 ‘through’로 번역을 하고 있지만 본래 의미는 ‘in’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는 의미보다는 ‘선지자들 안에서’ 말씀하셨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의 인격 속에서 역사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어쨌든 아브라함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에는 여러 선지자와 예언자들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또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여러 부분’은 ‘many times’, ‘여러 모양’은 ‘다양한 방법으로’(in various ways)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이유는 구약 시대까지는 하나님의 뜻이 통째로, 총체적으로,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아모스는 하나님의 정의를,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전했던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부분적인 깨달음과 지식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은 각자가 처한 상황과 처지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전할 수 있었다면 굳이 예수님을 보내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2절을 보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말합니다. 1절과 2절은 완벽하게 대비되는데, 먼저 ‘옛적에’는 ‘모든 날 마지막’과 대비되고 ‘선지자들을 통하여’는 ‘아들을 통하여’와 대비됩니다. 그리고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은 ‘만유의 상속자, 모든 세계’와 대비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구약 시대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부분적으로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상속자이고 하나님과 함께 창조를 이루신 분이기 때문에 여러 부분,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예언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의 율법이나 예언자들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하나님께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알게 하소서.
2.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성취하셨음을 믿게 하소서.
3. 만유의 상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의 삶을 누리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