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2:11~13,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묵상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말씀을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구원을 베풀어주신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여기서 ‘구원을 주시는’(σωτήριος)이라는 단어는 ‘σωτήρ’(구원자, a savior, deliverer, preserver)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형용사입니다. 그래서 ‘해방하다, 석방하다’는 의미이고 특히 성경에서는 ‘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구원은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즉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성별, 나이, 인종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건으로 무조건적인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그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24절에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거부하거나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12절을 보면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살’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육(παιδεύουσα)’하신다고 말하는데, 양육은 ‘to train children, correct, disciplin’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크게 두가지 의미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영생의 소망을 이루기까지 지속적으로 ‘훈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가르쳐주신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의미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양육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기까지 계속해서 성장하도록 이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양육의 과정에서 우리는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버리’는 삶을 훈련받게 되는데, ‘경건하지 않은 것(ἀσέβειαν)’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살아가면서 생겨나는 ‘사악한 일(impiety)을 의미하고, ‘세상(κοσμικὰς) 정욕(ἐπιθυμίας)’은 세상을 향한 열망, 갈망, 욕구 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양육을 받아 이와같은 것들을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 다음에는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버리려면 무엇이 경건한 삶인지를 알아야 하고, 세상 정욕을 버리려면 신중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양육에는 ‘훈련과 가르침’이라는 두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13절을 보면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라고 말합니다. ‘복스러운(μακαρίαν) 소망(ἐλπίδα)’은 ‘복된 소망, 복이 있는 소망, 복을 받는 소망, 소망의 복’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바울이 말하는 ‘복스러운 소망’은 곧 ‘영생에 대한 소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와같은 ‘복스러운 소망’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만큼 불행한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난과 핍박속에서도 복음의 삶을 살아가면서 견딜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복스러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이와같은 ‘소망’과 ‘기다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히브리서 6장 17, 18절에서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에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양육을 받으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디도서 2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늙은 남자, 늙은 여자, 젊은 여자, 젊은 남자, 종’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교훈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소서.
2. 하나님의 양육을 받아 경건하지 안은 것과 세상 정욕을 버리게 하소서.
3. 하나님의 양육을 받아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살게 하소서.
4.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게 하소서.
